중국이 35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블록버스터 '공자―춘추전국시대(11일 개봉)'는 영화적 완성도 못지않게 공자를 어떤 인물로 그렸을까 하는 점이 더 관심거리다. 공자처럼 한 문화권의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 평가는 그 사회의 진로를 둘러싼 현실 정치 노선과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하고, 양차오웨이·장만위·리롄제·장쯔이 등 스타들이 총출동한 영화 '영웅'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미화함으로써 중국공산당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이념적 도구로 활용됐다.

'공자'에서 홍콩 스타 저우룬파(주윤발)가 연기한 공자는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었다. 이웃 나라와의 교섭에서 세 치 혀와 위장전술로 빼앗긴 성을 되찾는 외교관이자 군사전략가였고, 전횡하는 유력 가문들의 성벽을 허물어 왕권 강화에 나서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영화 속 공자는 노나라에서 최고 관직인 대리국상을 지낼 만큼 성공한 인물이었다.

대륙을 떠돌던 공자(왼쪽)는 위나라 군주의 부인을 만나 유혹받는다. 영화에서는 간신히 뿌리치는 것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공자―인간과 신화'를 쓴 저명한 역사학자 H G 크릴 교수는 "'논어' '맹자' 등 여러 문헌을 검토한 결과, 공자가 일평생 유력한 벼슬을 한 적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노나라 유력가문의 성벽을 허문 사람도 중국 고전인 '좌전'(左傳)에는 공자가 아니라 당시 계(季)씨 집안 신하였던 자로(子路)였다고 기록돼 있다. 영화는 공자의 이력을 역사책을 쓰듯 정확한 연대를 못박고 구체적 사건과 연결시켰지만, 공자의 생애가 영화처럼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드물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顔回)가 물에 빠진 책을 건지려다 죽는 대목도 물론 허구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위나라 군주의 부인 남자(南子: 여자다!) 역을 맡은 대륙의 스타 저우쉰이 공자를 유혹하는 장면은 비교적 확실한 근거가 있다.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던 공자가 요부(妖婦)로 악명높은 남자(南子)를 만난 일은 '논어'에도 나온다. 이 사건은 당시에도 스캔들이었고, 제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영화 '공자'의 최대 약점은 평생 자신을 채용할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아다닌 공자의 일생을 연대기처럼 따분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영웅'이나 '황후화' 같은 장대한 스펙터클도 없고, 공자의 굴곡진 삶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지도 못하니 어정쩡하다. 남는 것은 의미인데, 한때 낡은 봉건사상가로 지목하고 '타도 공자'를 외치던 사회주의 중국이 공자를 중화문명의 간판스타로 활용할 만큼 여유를 갖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