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40~50대 이상 세대에게 '졸업식' 하면 꼭 떠오르는 곳이 중국집이다. 졸업식이 끝나면 부모들은 자녀를 데리고 으레 중국집으로 갔다. 졸업 손님이 한꺼번에 몰린 중국집은 북새통이었다. 한쪽에서 탕수육을 시키면 다른 부모도 뒤질세라 지갑 속 돈을 어림해보며 "우리도 탕수육 하나요" 했다. 중·고생에게 졸업식날은 모처럼 탕수육 먹는 날이었다.

▶그 시절 졸업식장을 빠져나오는 학생들 손엔 너나없이 화환과 상장통이 들려 있었다. 화환이라고 해봐야 비싼 생화(生花)를 대신해 둥근 테에 종이꽃을 붙인 조화(造花)였다. 긴 원통에 빨강, 파랑, 검정 융(絨)을 두른 상장통에는 '축 졸업'이라고 수놓여 있었다. 졸업을 축하하는 소품은 소박했어도 졸업생이나 가족이나 졸업이 지닌 대견한 의미를 귀하게 새기고 나눴다. 간혹 밀가루 뿌리고 교복 찢고 모자챙 뜯어 날리는 졸업생도 있었지만 몇몇에 지나지 않았다.

▶며칠 전 경기도 고양의 남녀 중학생 15명이 알몸으로 졸업 '빵'(뒤풀이)을 하는 사진 40여장이 인터넷에 퍼져 충격을 줬다. 졸업식을 마친 뒤 대낮 아파트 주변에서 속옷까지 모두 벗고 밀가루와 날달걀을 뒤집어쓴 채 인간 피라미드를 쌓거나, 담 아래 서 있는 사진이었다. 아이들은 경찰에서 "선배들로부터 '졸업빵'에 나오라는 문자 연락을 받고 안 나가면 혼날까 두려워서 갔다"고 말했다 한다.

부산청주에서도 알몸으로 도심을 달리고 바닷가를 누비는 졸업 뒤풀이가 벌어졌다. 제주에선 선배들이 여중생 7명을 포구로 데려가 교복과 속옷을 갈가리 찢어 반알몸으로 만든 뒤 포구 앞바다로 밀어 빠뜨렸다. 여중생들은 다행히 해녀들에게 발견돼 구조됐다고 한다.

▶'교복 찢기'는 조선시대 국립대 격인 성균관 수료식의 파청금(破靑襟) 의식(儀式)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유생(儒生)들은 임금이 내린 술잔을 돌려 마시며 군신(君臣)의 결속과 동창의 우의를 다진 뒤 푸른 제복을 찢었다고 한다. 밀가루는 일제 때 검정 교복이 백의민족의 기상을 억누른다 해서 뿌렸다느니 '밀가루공장 상술'이라느니 설(說)이 여럿이다. 밀가루에 이어 마요네즈, 식초, 케첩, 초고추장을 뿌리더니 이젠 알몸 뒤풀이까지 등장했다. 청소년들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만 좇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