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를 단숨에 읽기란 불가능하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가 왜 망했는가'라는 교훈을 추출하기 위해 《로마제국쇠망사》를 썼다면,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 '공화정이 왜 군주정보다 뛰어난가'를 입증하기 위해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대한 논평 형식으로 《로마사 논고》를 썼다. 그리고 20세기 후반~21세기 초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는 '인간과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로마인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러면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이 책은 '로마전쟁사'가 아니다. 제목의 뜻을 풀자면 '로마를 만든 전쟁들'이다. 영국의 대표적 로마전쟁 연구자 3인은 각각 카이사르의 갈리아전쟁(BC 58~BC 50), 카이사르의 내전(BC 49~BC 44) 그리고 제국기의 전쟁(AD 293~AD 696)을 집중 조명한다. 제국기의 전쟁 또한 왜 로마인들은 카이사르의 유산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카이사르와 무관하지 않다. 즉 이 책은 로마를 로마이게끔 해준 전쟁들에 녹아들어 있는 카이사르의 힘·유산·흔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미국의 작가 고어 비달은 이렇게 말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흉상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29세에 세계를 정복하고 32세에 세상을 떠난 반면, 카이사르 자신은 33세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해 아직도 자기 나라조차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리아의 족장인 베르킨게토릭스가 자신의 무기를 승리한 카이사르의 발밑에 던진 장면을 그린 19세기 유화. 플루타르코스는 이 사건을 묘사하면서 이후 베르킨게토릭스는 말에서 내린 뒤 갑옷을 벗고 카이사르가 경비병을 시켜 그를 끌어낼 때까지 그의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위대한 군인이자 야심만만한 정치가 카이사르는 정복사업을 통한 군사적 영예를 기반으로 국내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구상을 세운다. 호시탐탐 이탈리아 북부의 유럽대륙을 주시하던 갈리아 트란살피나(프랑스 남부) 총독 카이사르는 BC 58년 지금의 스위스 지역에 있던 헬베티 부족이 서쪽으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알아차리고 공격에 나선다. 명분은 헬베티 부족이 비운 자리에 훨씬 야만적이고 위험한 게르만족이 들어와 이탈리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전(開戰)의 명분이고 자신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 결정적 순간 포착과 속도전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카이사르의 '무기'였다. 그는 헬베티 부족의 이주 계획을 무산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등 라인강 서안을 포괄하는 갈리아를 정복한다. 게다가 《갈리아전기(戰記)》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카이사르가 후대에 미친 영향은 그가 거둔 승리 못지않게 《갈리아전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어난 일로서의 역사와 그 일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모두 카이사르는 장악했다.

이 책의 제2부는 내전(內戰)이다. 여기서는 로마 내전의 배경과 전쟁과정, 로마공화정의 종말과 로마제국의 탄생까지를 다룬다. 갈리아 정복의 영웅 카이사르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로마의 권력은 여전히 원로원에 있었다. 특히 카토 같은 이는 전쟁 기간 갈리아 부족 대학살을 문제 삼아 카이사르를 전범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병권(兵權)을 쥐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우유부단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때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명언을 남기고 루비콘강을 건넌다. 5년 내전에서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꺾고 독재관에 오른다. 공화정의 죽음이다. 그러나 황제를 꿈꾸었던 카이사르는 BC 44년 자신이 사면해주었던 폼페이우스파 인사들로 구성된 암살단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제3부는 《로마제국쇠망사》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취지도 기번의 그것과 비슷하다. AD 235년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살해당한 뒤 로마제국은 정치적 불안에 빠지고 이후 급속하게 쇠퇴의 길을 걷는다. 무능한 황제들은 말로는 제2·제3의 카이사르를 꿈꾸면서도 현실에서는 카이사르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그들이 이어받은 것이라고는 황제라는 칭호, 즉 카이사르뿐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국경의 압박, 찬탈자, 종교적 변화, 재정고갈 등을 단서로 '황금의 제국'이 '녹슨 고철의 제국'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기서도 주요 관심사는 잦은 전쟁 패배와 그로 인한 황제의 잦은 교체 등 제국과 외부의 전쟁이다.

이 책은 각종 전쟁과 전투를 상세한 지도, 도표, 일러스트레이션, 유물 유적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에서 전쟁사를 미시적으로 다루고 있어 로마사 초보자나 전쟁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조금 따분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