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우리 민족 고유 최대의 설 명절이다.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고 다들 고향을 찾는다.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 친척들과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하며 서로 삶을 나누는 나눔의 절기인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절기 지키기가 특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 국민이 매년 반복되는 절기 지키기에 정성을 쏟는다.
우리는 어떤가. 물론 설 명절이나 추석은 나름대로 잘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고 가르치는 교육적 노력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광복절이나 6․25와 현충일 등도 그냥 쉬는 날, 공휴일로 뜻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스라엘의 각급학교에서는 절기에 맞는 역할 놀이와 축제를 매년 반복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진지하고도 뜻을 되새기는 역사교육, 민족교육, 생활교육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의 광복절 같은 정부수립 기념일에는 전국적으로 각 도시, 마을마다 연예인들을 초청해 어우러져 축제를 연다.
음력을 따라 지키는 그들의 절기를 살펴보면 먼저 성경에 나오는 이집트에서 430년 노예살이 하다가 자유를 찾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페샤흐)이다. 그들은 이즈음 약 한달 전부터 대대적인 청소를 시작한다. 모든 누룩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고난의 떡을 상징하는 누룩이 없는 빵인 무교병과 쓴나물을 일주일간 먹는다. 집안의 가장은 역사와 배경을 가르친다.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로 보리농사 추수를 기념하는 오순절(칠칠절)이 있다. 나팔을 불어 새해시작을 알리는 나팔절을 새해절기로 지키고 이날 사과를 꿀에 찍어 먹고 나누며 나팔절에 대한 유래를 배운다. 샤나 토바(해피 뉴 이어)라는 새해 인사를 공사석에서 서로 나눈다. 그리고 10일에는 모든 국민이 금식을 하며 개인과 민족, 국가의 죄를 회개하는 대 속죄일(욤 키푸르)을 지킨다.
그리고 15일부터 일주일간은 민족 대이동을 하며 광야에서 살았던 40년 동안 천막에서 살았던 고난의 삶을 되새기는 장막절(숙곳), 페르샤 제국 시절 민족 집단살해의 위기 앞에서 유대인 왕비 에스더의 목숨 건 민족구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부림절에는, 원수 ‘하만의 귀’라는 별명을 가진 과자를 먹으며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역사를 기억한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와 사후의 장군 중 한 사람인 셀류오크 왕국 에스파니우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예배를 중단시킨 비극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성전예배를 회복한 성전 회복절인 수전절 곧 빛의 절기(하누카)에는 메노라라는 성전에 있는 일곱 가지의 촛대가 아닌 여덟 가지의 촛대에 매일 불을 하나씩 점등하며 기적 같은 성전회복의 역사를 기억하며 기쁘게 지킨다. 그리고 현충일과 정부수립일(독립기념일)을 연이어서 지킴으로 슬픔의 날을 하루 전날 지키고는 바로 다음 날에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지킨다.
단지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내는 공휴일만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와 신앙과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되새기는 절기교육을 계속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참여하게 하고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하고 배우게 만드는 자율적 교수 학습이 이루어지게 한다. 우리는 과거 학교에서 민족교육, 정신교육, 애국심 고취 등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산교육은 점차 묽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그저 입시위주의 교과 학습에 목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가정에서 설에 온 가족들이 모였을 때에 설 명절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의미를 가르치는 어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이라도 국민교육, 역사교육, 인격교육 차원의 명절 지키기를 위한 교육자료를 개발해 나누었으면 한다. 우리가 성취한 소산물들을 나누고 새해의 꿈을 나누는 설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저 세종시 찬반을 토론하는 정치토론의 장이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명절 때마다 “내년에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자”를 외치며 헤어진다. 나라를 잃고 땅을 잃은 설움과 방랑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늘 회복의 꿈을 외치며 나그네로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그들이 약 2000년 만에 나라를 다시 세운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들의 국가창설은 절기 지키기를 통한 민족적 비전 나눔과 다짐으로 이를 성취하고 만 것이다. 장막절에는 장막에서 밤을 새며 고난의 역사를 되새기며 평화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다짐한다. 부림절에는 온 국민이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이 된다. 그 의미는 원수의 음모에 의해 죽을 운명이었던 그들의 민족이 반전을 통해 살아남은 역사를 기념한다. 그래서 이날 하루만은 평소의 자신이 아닌 운명이 바뀐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전혀 몰라보게 자신을 변장시키는 흥미까지 곁들여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면을 만들고, 사기 위해 돈을 투자하며 즐겁게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하기야 요즘 6․25 기념일에 보리밥 먹기 등을 체험하는 새로운 풍물이 생기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의 명절 지키기가 체면문화에 안주하고 역사적, 교육적 의미를 놓쳐버린 속빈강정 같은 무의미한 휴일로 아이들에게 인식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는 것은 단지 필자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