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문명사회로부터 배출되는 폐물질(廢物質) 중에서 고체 형태로 버려지는 것', 쓰레기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미국 역사학자 수전 스트레서의 《낭비와 욕망》을 읽고 나면 쓰레기는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측면들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前)근대사회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먹고 남은 것은 버려도 개 돼지 닭 등 가축들이 먹어 없앴다. 옷가지 하나도 아끼고 물려주고 재활용하고 마지막엔 걸레로 썼기 때문에 헝겊 넝마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쓰레기통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전근대사회의 생활환경은 지금보다 더 더러웠을까? 쓰레기와는 다른, 배설물과 같은 오물(汚物)들이 넘쳐났고 처리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쓰레기의 사회사(社會史)'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은 버리기 시작했다. 먼저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버리는가?" 초기 단계에는 더러운 것, 상한 것, 먹을 수 없는 것을 버린다. 그런데 그 기준은 시대와 문화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쓰레기의 기준을 살피는 작업은 역사학, 사회학, 계급·계층이론의 관심사가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출발하는 시공간은 19세기 중반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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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누가 쓰레기를 만들어왔는가?" 물론 인간이 만들고 도시가 만든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좀 더 들어간다.

첫째, 도시는 소비를 향한 인간 욕망의 구현이다. 도시화 초창기에는 여유 있는 부자들이 버렸다. 그러면 가난한 이들은 쓰레기를 뒤졌다. 아직도 충분히 쓸 만한 것들이 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리는 행위는 권력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다." 20세기 초중반에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중들의 삶도 과거 부자들의 그것을 닮아간다. 그 결과로 경쟁적인 '과시적 소비'가 탄생했다. 소비는 권력이자 욕망이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쓰레기의 양과 질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둘째, 유행이 쓰레기를 만든다. '쓸 수가 없어서' 버리던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이젠 쓰기 싫어졌어"라는 이유로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쓰레기의 문화사가 유행의 역사와 겹치게 되는 이유다. 유행이라는 개념은 이미 100년 전 유럽의 부유층에서 생겨났지만 그 범위가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들어 미국에서 대중들이 유행의 물결에 올라타면서 쓰레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셋째, 의도적 구식화(舊式化)가 쓰레기를 만든다. 신제품이 등장하고 "낡은 것을 버려라"고 외쳐대는 광고가 쏟아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쓰던 물건을 '구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제품을 갈망하게 된다. 이럴 때 늘 주변에서 듣는 말이 "아직도 멀쩡한데 왜?"이다. 그래도 버리고,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주변 사람들의 눈 때문이다.

이런 구식화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기능적 구식화, 또 하나는 스타일 구식화이다. 프로펠러 비행기가 제트기로 나아갈 경우 프로펠러기는 기능적으로 구식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술발전과 관련돼 있어 크게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논란의 핵심은 스타일 구식화이다. 약간의 디자인 변화를 과장해서 신제품을 구입토록 유혹하는 광고가 넘쳐난다. 광고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이 집중적인 포화를 쏘아대는 지점이다. 저자는 주로 자동차 광고에서 스타일 구식화 전략이 집중적으로 구사되었다고 본다.

넷째, 편리함과 위생관념이 쓰레기를 만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종이컵·생리대·포장재 등 일회용품의 등장이다. 또 대형마트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육가공품과 채소류들이 대량으로 버려진다.

저자는 지난 150년 동안 진행돼온 미국의 쓰레기에 대한 사회사를 흥미로운 사례들과 함께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자연스레 우리의 지난 50년 역사가 오버랩된다. 미국 쓰레기의 사회사를 읽는 것이 묘하게도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이 책의 미덕은 또 있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면서 '대안 없는' 환경론의 함정을 피해갔다는 점이다. "이 책은 현재의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비판서가 아니라 쓰레기의 생산을 사회문화적인 과정으로 보면서 이를 시대변화에 따라 고찰한 역사서다." 저자는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쓰레기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자신의 작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쓰레기 문제는 쓰레기 같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