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30일 화폐개혁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이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전격 해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2월 3일자 보도

화폐개혁 후 북한은 주요 도시 공장에 포고문을 내걸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의 달러 사용 금지 ▲필요한 달러는 국가은행 이용 ▲불법 외화 사용자 엄벌 ▲미(未)신고자 처벌 ▲생필품 정찰제, 위반시 물품 회수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100원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하면서 구(舊)화폐의 교환 한도를 50만원으로 정하자 그 이상 되는 돈을 보유한 상인과 주민의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화폐개혁으로 인한 2차 쇼크는 작년 12월 월급 지급 때 일어났다. 근로자는 1500~2000원, 보위부, 인민군 장교는 평균 월급 3000원에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현금을 보너스로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구화폐 기준과 별 차이가 없는 액수의 월급을 지급받은 대다수 근로자는 어리둥절해졌다. 월 5000원을 받는 간부들은 구화폐 50만원 가치의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한 달 사이에 월급이 100배가 오른 셈이 됐다.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이내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장이 얼어붙었다. 시간이 지나도 상인들은 물건을 팔 수 없게 됐다.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보위부·보안성(경찰)이 총동원돼 평양의 통일시장과 평남 평성 시장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시장들을 폐쇄하면서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2월부터 수년 내 최악의 한파까지 겹쳤다.

마침내 북한 핵심 계층이 사는 평양시 아파트에 시장을 통해 공급되던 석탄, 나무 같은 에너지 공급까지 끊겼고 동사자(凍死者)가 속출했고 식량가격 폭등으로 전국에서 아사자(餓死者)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한 재중동포는 "60살 이상 되는 노인네들은 다 죽을 판이다"며 "이러다가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파와 기아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화폐개혁의 1차 피해자는 상인들이지만 국영기업 피해도 그에 못지않다. 한 고위탈북자는 "2002년 7월 경제개선조치 이후 북한의 주요 기업은 껍데기만 국영일 뿐 실제는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국가가 기업을 먹여살리는 '계획경제'가 파괴되자 북한 당국은 근로자를 시장으로 내몰아 돈벌이를 시켰다. 유능한 근로자들은 일정액만을 기업에 바쳤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금기인 부(富)의 개인 축적이 시작된 것이다.하지만 이번 화폐개혁으로 이런 기업과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망했다. 모아놓은 현금이 휴지 조각이 됐고 임금이 구 화폐기준으로 70~100배나 올랐으며 시장이 마비돼 근로자들의 배급식량이 끊긴 것이다.

화폐개혁 이후 외화사용 금지조치와 주요 환전상에 대한 검거령이 하달되면서 큰돈을 움직이는 당정군(黨政軍)의 주요 외화벌이 기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모든 달러를 북한 돈으로 환전하라는 지시 때문이다.

각자가 보유한 달러가 꼼짝없이 국가 수중으로 흡수되면서 알아서 해결하던 주요 기관의 활동자금 유통이 일시에 중단됐다. 대외 무역거래도 자율에서 내각 산하 무역은행을 통해야만 해 대외사업도 완전 정지됐다.

화폐개혁 직후 1달러에 75원에 처음 거래되던 환율은 암달러 시장에서 달러당 500원 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곧 1000원을 넘어 구화폐 기준 3000원까지 오르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북한 돈은 믿을 수 없고 외화사용도 금지되자 사람들은 물물교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믿을 만한 상대는 외화를 받고 팔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물건으로 거래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가보위부와 인민보안서 요원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불법달러 사용과 장사를 단속할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한몫 잡을 기회가 생긴 이들은 단속을 빙자한 달러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고 한다.

최근 국경을 넘은 탈북자는 "달러를 사용하다 출처를 캐는 보위부 단속에 걸리면 끝장이기 때문에 아예 그 자리에서 뇌물로 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단속요원들은 밑바닥 상인뿐 아니라 간부들에게까지 뇌물을 뜯고 있다.

함남 함흥이나 함북 청진에서는 '악독 요원'들이 길거리에서 폭행당하거나 살해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단속요원들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김정일의 '강냉이밥' 발언은 이런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온 말로 분석된다.

이번 화폐개혁은 내각주도로 진행됐지만 배후에는 노동당의 직접적인 지도와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종결정하고 내각 총리 김영일이 실무적 총지휘를 한 셈이다.

화폐개혁 부작용이 장기화하면서 북한에선 김영일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불만의 화살은 김정일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겉으로는 김영일 내각 총리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한 고위탈북자는 이번 화폐개혁은 한 나라의 경제를 완전히 마비시켰기 때문에 그 어떤 극약 처방이 나와도 한동안 혼란은 불가피하며, 자칫 체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