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채용방식을 현재의 외무고시와 함께 2년제 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로 이원화시키려 했던 방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모양이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외교경쟁력강화위원회가 지난달 '외교아카데미 검토안'을 마련해 이명박 대통령에 보고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오늘로 예정됐던 이 위원회의 회의가 무기(無期) 연기됐다고 한다. 일부에선 대통령에게 보고되기도 전에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탈'이 났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당초 외시(外試)를 완전히 없애고 외교관 후보들을 외교아카데미에서 교육시키는 방안,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ENA)처럼 고급행정관료 교육기관을 만들어 외교관도 다른 공무원들과 통합해 훈련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잠정적인 타협안은 외시로 일부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일종의 외교전문대학원인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충원하는 방식이었다. 외교부는 당장 외시를 없애는 급격한 변화에 저항했고, 고시(考試)를 관리하는 행안부 역시 공무원을 선발하는 권한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관은 역시 외시를 통해 뽑아야 한다는 '순혈주의+엘리트주의' 분위기도 한몫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글로벌'할 것 같으면서 '글로벌'하지 않고, 변화를 이끌 것 같은데 오히려 뒤처지는 외교부 특유의 분위기도 작용하는 듯하다.
한 외교관이 사석에서 "우리 외교관 중에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오늘날 우리 외교부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외교관이란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리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외국인과의 결혼비율이 높아지기 쉬운 환경에서 일한다. 실제로 외국 외교관 중엔 국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 외교관은 그러나 "그런 '모험'은 못한다"고 했다. "한국 외교부란 조직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과 달라지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데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한 외국인은 "한국에선 가장 보수적이고 배타적일 것 같은 농촌에 가면 오히려 국제결혼이 많고, 가장 국제적이고 마음이 열려 있을 것 같은 외교관들은 도리어 국제결혼을 기피한다는 게 흥미롭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상하게 세상 변화에 늘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어서야 여성 외교관을 아프리카 등으로 파견하면서 '여성 외교관들이 오지 근무도 한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분위기였다. 기업에선 이미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외시의 여성 합격 비율을 보면, 정부 어느 부처보다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데도 그런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고참 외교관 중엔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들어와 수십년 같은 조직 안에서 일하며 서로 비슷비슷해지는 사람들로 국제 사회의 다양하고 높은 파고를 헤쳐가기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수시'와 '정시', 또 그 안에서 더 복잡한 방식으로 나눠 선발한다. 국민 세금을 받으며 국익을 위해 일하는 외교관들은 당연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해야 한다. 한 젊은 외교관은 "제도가 바뀌어 외교 전문대학원에서 수준 높은 훈련을 받은 후배들이 고시 출신 선배들을 재빨리 추월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변화에 저항이 없을 수는 없으나 달라져야 할 땐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
입력 2010.02.04. 22:14업데이트 2010.02.0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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