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 사는 토머스 부부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29)을 5년째 간병하고 있다. 어느 날 이 부부에게 애드리안 오언(Owen) 박사를 비롯한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edical Research Council) 연구팀이 찾아왔다. 연구팀은 토머스 부부에게 "아드님과 대화를 좀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단 한마디도 못하고 희미한 동작조차 보이지 않은 채 ‘무의식’ 상태로 5년간 누워 있던 식물인간(植物人間·vegetative state)에게 말을 건네겠다는 것이었다. 식물인간은 ‘의식도 정지된다’는 게 기존 학설이었다. 연구팀은 그러나 ‘식물인간이 된 환자 중 일부는 의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정을 세우고 ‘대화’를 시도했다.

연구팀이 그의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운동 영역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과 공간 감각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이 다른 점을 이용했다. 묻는 말에 대한 답이 ‘예스’면 ‘테니스 코트에서 공을 상대방에게 던지는 이미지를 상상하도록 했고, ’노‘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상상하도록 했다. 식물인간 환자가 만약 의식이 있다면, ’예스‘냐 ’노‘에 따라 뇌신경이 활동하게 되며 이때의 뇌파와 혈류의 움직임을 탐지하기 위해 기능적 자기공명이미지 스캔(fMRI)을 동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버지의 이름이 알렉산더가 맞느냐”는 질문에, 식물인간의 뇌에서 ’테니스 코트에서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의 피질이 활성화됐다. “아버지의 이름이 토머스냐”는 질문에는 식물인간의 뇌에선 공간 담당 뇌 부위가 활성화했다. 모두 6개의 질문에 식물인간은 5개를 정확하게 답했다.

실제로 연구팀은 다른 식물인간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도 “대개 교통사고 등 외상으로 뇌가 손상된 환자들이 질문에 반응했고, 심장마비 등 산소결핍으로 손상된 환자의 뇌는 반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안락사’에 대한 생명윤리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fMRI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연명(延命)치료에 대한 식물인간 자신의 의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뇌손상연합의 수전 코노스 대표는 “fMRI 검사는 뇌손상을 입은 가족의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하지만 논문의 공동 저자인 마틴 몬티는 4일 “의식이 있더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으냐’와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식물인간이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 저명한 의학저널인 ‘저널 오브 뉴 잉글랜드 메디신(Journal of New England Medicine)’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