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채색목판화, 유럽인의 눈을 사로잡다

19세기 후반 만국박람회 열풍에 휩싸인 세계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속도로 엄청난 물량의 교역이 이뤄졌다.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 이후 재빠르게 유럽에 진출, 서양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은 자국 문화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위해 대규모 문화재와 상품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일본 도자기가 유럽인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자기 제작에서 중국, 한국보다 한참 늦었지만, 근대화에 앞선 일본이 유럽인의 취향에 맞는 도자기를 제작·수출함으로써 세계시장을 장악했다.

이와 함께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일본의 수출용 도자기를 포장했던 포장지, 즉 일본에서 유럽까지 오는 오랜 항해 동안 도자기가 깨지지 않게 하는 데 쓰인 질 좋은 그림 종이가 유럽인, 특히 인상파 화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포장지에 그려진 이국적인 풍경 그림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생소한 것이었다.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엔 아까울 정도로 회화적 작품성이 높다고 평가한 인상파 화가들은 이 포장지를 수집하기에 이른다. 이 포장지 그림은 일본 에도 시대(1603~1867년)에 유행한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이다.

◆일본 에도 시대의 서민문화 담은 우키요에

일반적으로 우키요에는 다색목판화를 뜻하며 그림내용은 대부분 풍속화다. 그러나 '우키요에'라는 말은 일본의 특정한 회화 작품 양식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보통명사로서의 풍속화와는 구별된다.

먼저 '우키요(浮世)'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자. 똑같은 발음의 다른 말인 '우키요(憂き世)'에서 나온 말이다. 근세 이전에 계속된 전란으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서민들은 불교의 염세사상에 따라 현세를 '우키요(憂き世)' 즉, '덧없는 세상, 허무한 세상, 근심스러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근세에 이르러 사회가 안정되면서 현세는 순간일 뿐이라는 사고가 팽배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우키요(浮世)'는 어느새 속세, 현실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당시 유행하던 그림에도 '우키요에(浮世繪)'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속세, 현실의 여러 모습을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문을 연 무사계급의 막부정치가 이어진 봉건시대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초닌'이라 불리는 도시 상공 계층의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무사 계급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가 발달했다. 우키요에도 대표적인 초닌 문화이다. 우키요에에 자주 등장하는 기녀, 가부키 배우, 스모 선수, 명승지 풍경 등의 소재도 당시 초닌 계급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이다. 처음에는 한 장 한 장 그려서 제작하는 '육필화'의 형태였다가 서민층의 호응을 받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대량 생산이 가능한 판화 형태로 발전했다.

빈센트 반 고흐,‘ 일본예술품(비 내리는 다리)’, 캔버스에 유채, 73×54㎝, 188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미술관 소장

◆인상파에 강렬한 영향을 끼친 자포니즘

앞서 이야기한 대로 19세기 중엽 일본문화 열풍이 프랑스 파리를 온통 뒤흔들었다. '우키요에'가 이 열풍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르네상스 회화 이후 원근법과 명암법에 따른 고전적인 회화 전통에 익숙한 화가들에게 우키요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풍경과 인물이 함께 담긴, 혹은 근경과 원경이 절묘하게 맞부딪치는 일본 풍속화를 보며 유럽 화가들은 새로운 화풍을 전개했다. 19세기 후반 서양미술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 즉 '일본풍' 또는 '자포니즘(Japonisme)'은 유럽의 인상파와 아르누보에 영향을 줬다. 집약된 주제와 인상을 대담한 구도로 엮어내고, 단순한 선과 색채는 밝고 평면적이며 표현성이 풍부해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회화적 특징을 자신의 그림에 반영하거나 공유했다.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열광적인 일본 미술품 수집가였다.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 안도 히로시게(179~1858)의 작품을 모사한 '일본예술품-비 내리는 다리'는 고흐의 일본 열병을 짐작게 한다. 한자까지 애써 그려 넣은 그의 노력을 보면 우키요에에서 받았을 깊은 인상과 호기심, 흥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반 고흐 외에도 인상파 화가인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등도 '자포니즘' 취향을 보여줬다.


※더 생각해 볼 거리

―19세기 후반 유럽에 등장한 '자포니즘(Japonisme)'은 하나의 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인 현상으로 서구 미술작품에 나타난 일본미술의 영향을 말한다. 자포니즘의 영향은 미술을 비롯해 건축과 사진, 음악과 문학 등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 걸쳐서 나타났는데, 그 실례를 찾아보자. 이와 함께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 우리 문화가 다른 문화에 영향을 끼친 예로는 무엇이 있는지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