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문화부장

동양에서 국가 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대(事大)'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춘추시대(BC 722~BC 481)의 역사를 기록한 '좌전(左傳)'이다. "예(禮)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아끼는 것을 말한다[禮也者 小事大 大字小之謂]"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이른바 '자소사대(字小事大)'의 원리는 중국 내부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오랫동안 규정해 왔다. 한민족의 경우 조선시대 들어 큰 나라(중국)를 섬긴다는 '사대(事大)'는 이웃나라(왜·여진 등)와 사귄다는 '교린(交隣)'과 함께 공식 대외정책이 됐다.

이에 비해 '강한 나라를 받들어 섬기는 주체성 없는 태도'를 가리키는 '사대주의(事大主義)'란 용어가 우리 역사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일제 말 일본 학자들이 한국 역사는 반도(半島)라는 성격 때문에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결정돼 왔고, 그 때문에 강대국을 섬기는 것이 민족성이 됐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그동안 중국을 섬겼듯이 이제 일본을 섬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런 주장은 식민사관(植民史觀)의 핵심 요소다.

최근 일본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가 "한국의 놀랄 만한 발전의 동력은 사대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대주의가 요즘 말로 하자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열심히 따라가려는 국가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중국이었기 때문에 중국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금은 세계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함께 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DNA를 갖고 있는 한국인과 그렇지 못한 일본인을 비교하기도 했다.

오코노기 교수는 종래 국가 간 힘의 우열에 따른 역학(力學) 관계로만 해석돼 온 '사대'나 '사대주의'를 문명 표준의 수용이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려 했다. 한민족이 국가 사이의 외형적인 격식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선진국과의 문물 교류를 통해 국가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실용주의를 견지해 왔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여기서 '사대주의'는 '사대'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려는 국가전략을 뜻하는 역사 용어는 '사대'이지, 강한 나라에 대한 비굴한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 식민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사대주의'가 아니다.

'사대'에는 보다 고급문명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적극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한민족의 고투(苦鬪)가 담겨 있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표준이었던 중국문명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두 극단적인 태도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과 '삼국유사'를 쓴 일연으로 대표된다. 김부식은 낙후된 고유문명을 버리고 선진적인 중국문명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일연은 고유문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학자인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들의 대립이 중국문명(한자)과 고유문명(한글)을 통합하려 한 세종에 의해 발전적으로 해소됐다고 설명한다. 조선왕조가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채택한 대(對)중국 정책이 '사대'였다.

여전히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고 아직 선진국에 들어서지 못한 한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오코노기 교수가 말한 '사대'가 불가피할 것이다.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으며 새로운 것과 옛것을 조화시켜온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