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 김유상(10)군은 요즘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다. 방학 초에 세웠던 '책 50권 읽기'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하지만 시간에 쫓긴 상태에서 책을 잡을수록 책의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방학 막바지를 맞아 처음 세워뒀던 계획대로 권수를 맞출 것이냐 아니면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을 것이냐를 놓고 고민 중이다. 다독이냐, 정독이냐는 것이다. 교육과학부가 지난주 발표한 고교입시 개편안에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를 어떻게 진행할지가 관건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독을 할 것이냐, 정독을 할 것이냐

흔히 독서습관이 형성되는 초등생의 경우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을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좋은지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독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독과 정독의 우위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균관대 정보관리연구소 조미아 박사는 정독을 우선시한다. 조 박사는 "정독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정독을 하면서 책 내용에 집중하고 깊이 생각하면 이후 학년이 올라갔을 때 혼자서도 어려움 없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힘이 길러진다는 의미다. 또한 정독이 습관화되지 않은 아이가 무조건 책을 많이 접할 경우 수박 겉핥기식의 독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독이 되지 않으면 책의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책 한 권을 읽을 때에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왜 그런지' 지은이의 생각을 추리하거나 상상해보고 잘못된 점은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펜교육연구소 이숙미 선임연구원은 학년별로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독서는 다독을 바탕으로 한 상태에서 정독하는 것인데, 아이가 연령이 낮거나 독서력의 수준이 높지 않다면 책을 많이 접하는 다독하는 습관을, 초등 고학년의 경우에는 세심하게 책 내용을 살피는 정독하는 습관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허병두 교사는 다독을 권한다. 이때 다독은 단순히 권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종류의 다양성을 내포한다. 그는 "특히 초등생의 경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어휘력을 넓히고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이런 경험은 다양한 교감으로 이어져 두뇌를 자극한다"고 강조했다.

만화책만 읽으려는 것은 위험

전문가들은 독서습관이 잡히기까지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으나,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흘려버릴 수 있다는 다독의 단점을 경계했다. 사단법인 전국독서새물결모임 임영규 회장은 "다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자칫 흥미 위주의 독서에 빠지거나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넘어갈 단점이 있다. 이런 방법의 독서는 수용적 입장의 독해나 다양한 지식의 축적은 가능하지만, 비판적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무조건 권수만 늘리려는 목적으로 만화를 읽는 습관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성초 소진권 교사는 "만화는 그림과 간단한 문장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사고를 단순화시키고 다른 책을 읽지 않으려는 위험성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히 읽으려 할 경우에는 단편 소설이나 동화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숙미 연구원 또한 "만화를 읽어 생긴, 책을 쉽게 읽으려는 습관은 정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때가 잦다. 특정 장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무조건적인 독서 강요는 말아야

아이가 올바른 독서습관을 가질 때까지 부모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하나의 습관에 빠지지 않고 때에 따라, 목적에 따라 정독과 다독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우선 초기에 독서습관을 잘 잡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독서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양의 책을 무조건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조미아 박사는 "아이가 책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면 아이에게 요구하는 독서의 수준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부모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기억력이 채 성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히고자 하면 아이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자칫 독서는 따분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순수하게 아이의 흥미와 관심에 맞는 주제의 책을 찾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무조건 책을 읽으면 칭찬을 하거나 섣부른 물질적 보상도 위험하다"고 귀띔했다.

가정의 분위기 또한 중요하다. 소진권 교사는 "책을 읽었는지 감시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부모도 함께 독서를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다. 자녀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미리 서점에 가서 책을 파악해두는 것도 현명하다. 학년별 추천도서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대개 추천도서는 공신력이 인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행간을 읽으면서 의미를 추출하고 상상해보게 하는 정독습관을 추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임영규 회장은 "아이 스스로 독서가 자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유익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곁에서 응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 내용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독후 활동을 통해 독서습관이 몸에 배게 지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