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흔한 의사소통 방식은 발광(發光)이다. 심해 동물의 90%는 스스로 빛을 만든다. 빨판 하나하나를 작은 전등으로 개조한 발광빨판문어는 심해(深海) 환경에 적응한 진화의 한 증거다. 이들의 빨판은 흡착성을 버린 대신 빛을 내뿜어 먹이를 유인한다. 곤충이 가로등으로 달라붙듯 플랑크톤 갑각류들이 다가오면 점액질의 그물을 던져 붙잡는 것이다.

수심 200m 아래 바다에는 식물이 없다. 온통 동물 혹은 광물뿐이다. 고립과 냉기, 어둠과 수압을 견뎌야 하지만 심해 생물들의 자태는 아름답다. 보석오징어는 수심과 주변의 밝기에 따라 발광 시간과 강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거나 빛을 완전히 끌 수 있다. 흡혈오징어는 이름과 달리 무해한데, 우산처럼 몸을 펼치고 지내다가 달아날 때는 다양한 발광 기관을 작동시킨다.

투명한 젤라틴질 무척추동물은 그동안 과소평가돼왔다. 대표적인 게 해파리다. 해파리는 95% 이상이 바닷물로 이루어져 있고 몸을 붙들어놓을 만큼의 근육·표피·신경을 가지고 있다. 물렁물렁하고 속이 다 보이지만 이들은 바다에서 가장 게걸스러운 포식자다. 풍선빗해파리는 접착 세포로 뒤덮인 거대한 촉수로 먹이를 낚아챈다.

이 책은 아무렇게나 펼쳐도 경이롭다. 바다 속 까마득한 어둠과 심해 생물의 순도 높은 사진이 거기에 있다. 영원한 어둠으로 덮인 거대한 물속에서 리본이 물결 치듯 몸을 꼬았다 풀면서 나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특수효과 같다.

프랑스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는 세계에서 수집한 사진 중 220장을 고르고 15편의 에세이를 붙였다.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진 괴물 물고기, 섭씨 80도가 넘는 열수공에 사는 벌레, 투명한 몸을 지닌 오징어…. 그들의 생존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각 심해 생물들과 관련된 기본 정보는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심해를 밝히는 책이다.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심해의 경계에서 포착된 아름다운 무늬들을 건져 올렸다. 사진은 수심 6000m까지 잠수하는 탐사 로봇과 유인잠수정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원제 《Abys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