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타히티가 아니다. IT(정보통신기술)는 더더욱 아니다. 하이티는 얼추 아이티다.
프랑스 화가 고갱(1848~1903) 작 '타히티의 여인들' 덕분에 덜 낯선 타히티섬은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다. 지진 참사를 겪고 있는 카브리해의 Haiti는 아이티라고 읽는다. '높은 산들의 나라'라는 뜻이다.
1804년 프랑스에게서 독립한 공화국이다. 불어가 공용이다.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독립국가다. 흑인노예가 반란, 독립을 쟁취한 세계유일의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의 90~95%는 아프리카 출신 흑인, 5~10%는 아랍·프랑스·독일·폴란드·포르투갈·스페인·유대 혼혈이다. 중국 출신도 400명쯤 살고 있다.
겉으로 아이티는 크리스천의 영토다. 국민의 80%가 로만 가톨릭 신자, 16%는 기독교도다. 물밑에서는 부두교가 득세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동시에 부두에 의지하는 인구가 절반 이상이다.
부두는 다신교다. ‘부’는 자기성찰, ‘두’는 미지의 존재를 가리킨다. 좀비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부두의 왜곡사례다. 부두는 싱크리티즘, 쉽게 말해 짬뽕신앙이다. 하느님의 종류가 다양하다. 불명예와 탐욕을 죄악으로 본다. 아이티 가난의 이유일 수도 있다. 부자는 대개 뻔뻔하고 욕심이 많다.
부두 최상위 신은 만물을 창조한 본다이에이다. 본다이에이 아래로 로아라는 신들이 도열해 있다. 본다이에이는 가톨릭의 하나님, 로아는 성인들이다. 본다이에이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로아들은 상대적으로 만만하다. 선택의 길을 가르치는 로아, 사랑의 로아, 비(雨)와 마법의 로아, 농경의 로아, 그리고 본다이에이의 쌍둥이 자식들인 로아 등에게 아이티인들은 특히 매달린다. 이들 로아는 가톨릭의 특정 성자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부두에는 교황과 같은 구심체가 없다. 냉정함과 가족사랑, 관용, 기부를 중시한다.
부두 의식은 가톨릭 기도문과 찬송가로 출발한다. 이후부터는 끝날 때까지 이교도식이다. 초혼을 하고 즐기듯 가무한다. 동이 틀 때까지 밤새 이어지는 의례다. 집에는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생전에 그들이 좋아한 로아의 형상과 향수, 음식 등을 차려올린다. 촛불, 옥수, 꽃은 기본이다.
고대로마 이래 근대유럽에 이르기까지 신의 이름으로 숱한 살육이 자행됐다. 중세유럽의 마녀재판이 하이라이트다. 13세기 로마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작품인 마녀사냥은 15세기말~18세기초 유럽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마녀를 불태운 연기다.
물론, 옛날 얘기다. 가톨릭은 아이티의 부두에 무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집트 정벌을 앞두고 코란을 통독하면서 졸개들을 다독인 프랑스의 나폴레옹(1769~1821)과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우리가 상대할 이들은 이슬람교도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신은 알라고 마호메트는 선지자다. 교리를 반박하지 마라. 이슬람 율법학자와 성직자에게는 랍비나 주교를 대하듯 존경을 표하라. 로마 가톨릭은 모든 종교를 보호한다. 앞으로 만날 이들의 관습은 유럽인의 것과는 다르다. 제군은 이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훈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제일 먼저 아이티 국민들에게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긴급구호자금 5만달러(약 5700만원)도 지원했다. 이러한 정신·물질적 도움은 부두를 희석할 개연성이 크다.
아메리카대륙의 최빈국인 아이티에는 870만명이 살고 있다. 1인 소득은 790달러(약 89만원)다. 182개국 가운데 149위다. 하루 2달러 이하로 연명한다. 도시로 보내져 무보수 종살이를 하는 어린이만 최소 22만5000명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세계 최고수준인 부패국가이기도 하다.
지진 참사 이전에도 죽음과 가까웠다. 어린이들은 예방접종을 거의 못 받는다. 기초의료 수혜층은 40% 남짓이다. 사망원인의 50%는 AIDS, 호흡기 감염, 뇌막염, 설사병 따위다. 폐결핵 환자는 남아메리카 평균의 10배를 훌쩍 넘긴다. 1년이면 말라리아로 숨지는 남녀가 3만명에 달한다.
초능력 슈퍼맨이 출현한다. 그의 불가사의 기적을 체험한 고학력 신도가 이 반인반신의 언동을 글로 기록한다. 경전의 탄생이다. 다음 단계는 추종세력 급증이다. 미신이 종교로 격상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