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현 세계자원봉사협의회(IAVE) 회장

최근 세계 자원봉사활동에 몇 가지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이타(利他)정신이나 시민정신만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자원봉사자 자신과 수혜대상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원봉사활동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원봉사활동이 봉사자 개인에게 만족감과 자긍심을 주고 건강증진의 효과를 가져와 결국 봉사자 자신의 행복 증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경비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행복추구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며, 국가가 그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자원봉사활동은 수혜자의 자립(自立)을 넘어 자원봉사활동 기회를 그들에게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수혜자와 자원봉사자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재능 나눔'이다. 기술 기반 봉사활동(Skill-Based Volunteering)이라고도 한다. 개인이나 지역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하려면 돈이나 단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쉽지 않다. 개인이나 지역사회단체에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인 경우가 많다. 그 전문성을 나누자는 것이 '재능 나눔'이다.

세계적으로 재능 나눔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집단이 바로 투자 효과와 효율에 민감한 기업이다. 시간당 높은 임금을 받는 임직원들이 단순 노력 봉사와 같은 자원 봉사를 할 경우 투자한 만큼 효과가 날 수 없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은 기업 자원봉사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단순 노력 봉사가 아닌 임직원들의 '재능 나눔' 또는 '기술 기반 봉사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재능 나눔'은 주로 개인을 돕는 멘토링·집짓기·스포츠 코칭 같은 숙련활동에서부터 법률·의료·컨설팅·디자인처럼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전문 직업활동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를 돕는 이사회·운영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 활동'이 활동 효과가 좋고 효율이 높으며 사회적 영향도 크다. 이 위원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이 기업이다. 선진국일수록 시민사회단체의 수가 많고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업의 임직원들이 자신의 재능을 단체를 위하여 활용하는 '재능 나눔'을 하기 때문이다.

IBM은 1993년부터 '재난대응팀'을 구성하여 구호물자 제공은 물론 물자관리 시스템 개발과 관리기술 이전 교육까지 제공하면서 세계적으로 70개 이상의 재난에 대응하고 있다. 제록스(Xerox)사는 1971년부터 직원에게 6개월 내지 1년간 안식년을 주어 지역사회 단체에서 일하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460명이 재무분석, 직무분석과 디자인, 소프트웨어 프로세스, 전략적 예산수립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세계최대 제약회사인 화이자(Pfizer)는 아프리카에 에이즈 감염 치료약을 제공하고 보건 교육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개발도상국의 보건관리 기관 및 지역사회 파트너 단체에 의료 및 보건관리 전문 자원봉사자(Pfizer Global Health Fellows)를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작은 기업도 재능 나눔을 하고 있다. 호주의 법률회사들은 직원들에게 '자원봉사 휴가'를 주어 지역사회 단체들과 소외계층에게 법률자문을 하게 한다. 그런 법률회사가 100개가 넘는다.

지역사회의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 교수는 "기업의 사회공헌은 지역사회에 최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로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바로 재능 나눔이다. 아직 우리는 주로 뜻있는 개인들이 재능 나눔에 나서는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기업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면 재능 나눔의 효과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커질 수 있다. 나아가 사회의 변화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