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의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마타하리.

'이중간첩'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의 미 중앙정보국(CIA) 기지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범인 후맘 칼릴 아부물람 알 발라위는 CIA의 정보원이면서 알 카에다 첩자였다.

지난달 28일 국내에선 이중간첩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이수근 관련 판결이 나왔다. 사형된 이씨를 도운 혐의로 21년간 복역했던 이씨의 처조카 배경옥(71)씨와 가족 등 15명에게 국가가 22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이중간첩(二重間諜)'은 언제부터 비롯됐으며 지금도 여전한 이유는 뭘까. 이중간첩의 기원은 첩자의 그것과 거의 같다. 손자병법에서 말한 것처럼 이중간첩도 간첩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은 이중간첩을 적의 간첩을 포섭해 역이용하는 '반간(反間)'이라 했다. 간첩의 기원은 서양보다 동양이 2000년쯤 앞선다. 중국은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에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선 삼국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고구려는 승려를 첩자로 쓰거나 주변국과의 혼인관계를 활용했다. 장수왕 때 승려 도림이 위장간첩이었다.

전쟁은 간첩들에겐 기량을 맘 놓고 뽐낼 절호의 기회와 다름없다. 서양에선 1·2차 세계대전이 특히 그랬다. 1차 대전의 예로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이중간첩을 했던 마타하리가 대표적이다.

처음엔 독일 정보원으로, 나중에는 프랑스에 포섭돼 활동하다 독일이 프랑스에 일부러 흘린 역정보 때문에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마타하리에 대해선 이중간첩이 아니었다는 주장(영국 정보부)도 있다.

2차 대전 때엔 영국과 독일 양측 모두가 신임했던 두잔 포포프가 유명하다. 유고슬라비아 태생인 그는 처음에는 독일 정보기관에 포섭됐다가 이후 영국 정보기관으로부터 이중간첩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독어·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이탈리어도 잘했던 그는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독일군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렸고 독일의 로켓 개발에 관한 정보도 영국에 넘겼다.

암호명은 '세발자전거(tricycle)'였는데 그가 1대3의 섹스를 즐겼던 데서 붙여졌다. 2차 대전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됐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는 후안 푸욜 가르시아라는 스페인 출신 이중간첩도 한몫했다.

그의 암호명은 가르보였고 처음에는 독일간첩이었는데 1942년 영국에 포섭됐다. 그는 연합군 상륙지점이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이며 병력도 실제보다 많은 77개 사단과 17개 여단이라는 거짓정보를 독일군에 흘렸다.

대한민국으로 위장 귀순한 인민군 소좌의 삶을 그린 영화 ‘이중간첩’. 남한의 정보기관에서 일하며 북으로 정보를 빼돌리던 주인공은 결국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는다.

간첩을 활용하기 위해 기발한 방법도 동원됐다. 나치는 특수훈련시킨 비둘기 다리에 비밀문서를 매달아 영국에 잠입한 간첩들에게 전달했다. 이를 안 영국 정보기관이 송골매 부대를 만들어 나치 비둘기를 격퇴하기도 했다.

사로잡은 비둘기는 전쟁포로로 분류됐고, 다리에 매달린 비밀문서는 간첩들을 색출하는 근거로도 사용됐다. 전쟁이 끝난 뒤엔 이중간첩이 사라졌을까. CIA는 냉전 이후 오히려 이중간첩이 더 많아진 것으로 분석한다.

2001년에는 무려 27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방첩 임무를 맡아왔던 로버트 필립 핸슨이 1985년부터 15년 동안 구소련과 러시아를 위해 이중간첩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에게 정보를 줄 테니 돈을 달라고 먼저 제안했다. 그는 컴퓨터 디스켓과 기밀서류를 건네면서 140만달러 가량을 받았다. 이 사건 후 FBI·CIA뿐 아니라 백악관에 대해서까지 간첩 색출작업이 벌어졌다.

최근 막을 내린 TV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도 청와대 핵심참모가 간첩활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의 실제 사례로는 재작년 40대 중반의 남성이 "나는 1990년대 남·북 이중간첩 활동을 했다"고 스스로 폭로한 것이 있다.

그는 1991년 북한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시작한 뒤 이듬해 안기부에 자수했고 이후 대북 역공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 대화내용을 안기부에 전했고 북으로부터 공작금까지 타냈다"고 했다.

이중간첩은 보통 간첩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다. 그런데도 정보기관들이 이중간첩에 매료되는 것은 위험이 큰 만큼 대가도 크기 때문이다. 1990년대 기밀이 해제된 CIA자료에는 이중간첩의 종류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스스로 찾아와 이중간첩이 되겠다고 나서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적에게 들통난 뒤 이중간첩 임무를 부여받을 때이다. CIA 문서에는 후자의 경우 이중간첩이 진정으로 전향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돼 있다.

아프가니스탄 자폭 테러범은 두 번째 케이스였다. 1년 전 요르단 정보국에 체포된 뒤 알카에다에 재침투해 이중간첩을 하라고 포섭된 인물이다. CIA는 정작 경고는 오래전에 해놓고 화(禍)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