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품점에서 판매하는 지전(紙錢)들. 발행처는 극락은행·저승은행 등이다.

부산대학교병원에서 지장보살 초상이 그려진 5만원권 위조 지폐가 발견됐다. 진료비 수납 과정에서 발견된 이 지폐에는 '오만원' 대신에 '오만관', '한국은행' 대신에 '극락은행'이 적혀 있었다. 1월 14일 연합뉴스 보도

진짜 돈과 섞여 있으면 착각할 수 있지만 이번에 발견된 오만관 지폐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가짜 돈이다. 위조 지폐라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다. 액면 단위 '관(貫)'은 엽전을 세던 단위이다.

크기는 실제 5만원권보다 가로·세로 6mm 정도 크다. 색도 흐리다. 종이질도 다르고 정교하지도 않다. 부산서부서는 "이 지폐는 행사용품으로 추정된다"며 "제작 및 유통의 고의성에 따라 죄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밝힌 '행사용품'은 불교 의례에서 주로 쓰는 '지전(紙錢·돈 모양의 종이)'으로 추정된다. 지전은 민간신앙이나 불교 장례 의례에 쓰는 용품이다. 세간에서 '저승길 노잣돈'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이다.

지전은 불교용품점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다. 가게에서 파는 지전에는 발행처·초상화·액면가가 인쇄돼 있다. 생김새는 실제 화폐와 유사하다. 이번에 발견된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그려져 있는 지전은 '지장전'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은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성불하기를 미루고 지옥문 앞에서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보살이다. 지장보살 대신 염라대왕이 그려진 지전도 있다. 발행처는 저승은행이고 염라대왕 초상이 있지만 지전 이름은 옥황전(玉皇錢)이다.

돈을 노잣돈으로 관에 넣거나 태우는 풍속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전래된 풍습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중국이다. 중국은 기원전 12세기 상(商)나라 때 당시 화폐로 쓰이던 조개를 함께 묻었다.

이후 제삿날이 되면 돈처럼 자른 종이를 태우는 풍속으로 바뀌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 초기 형태인 브라만교 시대 제사 의례에서 비롯됐다.

조계종 불학연구소 서재영(47) 연구원은 "불 속에 제물을 던지는 브라만교 의식이 불교에 전승돼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제물 태운 연기가 이승과 저승을 이어준다는 발상이다.

티베트나 몽골의 불교 그리고 일본 불교 일부 종파에서는 지금도 제물을 불에 태우는 번제(燔祭)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 들어온 지전은 민간신앙과 결합했다.

서 연구원은 "30년 전까지 불교 지전은 창호지에 엽전 모양을 그려서 만들었다"며 "이후 현세 기복적인 민간신앙과 결합하면서 진짜 돈 모양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속신앙에 따르면 지전은 저승에서의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라며 "엄밀하게 말하면 유사화폐 형태의 지전은 샤머니즘이 원천으로 불교사상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