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한파가 몰아 닥친 지난해 12월 말 강원도 춘천에 사는 박은혜씨는 아침에 식사준비를 하다가 울상이 됐다. 이사 오자마자 터져버린 수도계량기가 교체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얼어버린 것이다. 급한 대로 관리사무실로 전화했더니 계량기 교체에 관 녹이는 것까지 12만원을 불렀다.
#사례2
서울에 사는 김모씨는 자다 말고 날벼락을 맞았다. 복도식 3층 아파트인데 천정에서 시뻘건 녹물이 줄줄 흘려내렸다. 김씨 가족은 한밤 중에 침대 옮기고 책상 치우느라 한참 소란을 피워야 했다. 윗집 수도계량기 동파 때문이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못한 것이니 그쪽에서 배상을 해야 한다고 펄펄 뛰고, 관리사무소 측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버텼다. 이미 바닥엔 물이 흥건하고 벽지는 물론이고 가구에 컴퓨터까지 젖어버렸다. 김씨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수도계량기 동파는 사용자 책임"
겨울철이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으로 이렇게 동파 사고가 났을 때 당사자는 어찌해야 할지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울시 수도 조례에 따르면 급수설비인 수도계량기는 수도사용자의 소유이며 그 관리 역시 수도사용자의 책임으로 돼있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이은우 변호사는 “한파 등 자연재해일 지라도 관리가 소홀했을 경우 결국 발생한 손해는 사용자의 몫이고 이에 따른 이웃의 피해는 100% 수도사용자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적지 않다. 수도세를 내기 위해 설치돼 있는 수도계량기를 개인이 일일이 점검하고 얼지 말라고 수돗물을 매일 틀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계량기가 쉽게 동파 되는 것은 검침이 쉽게 이뤄지도록 계량기가 외부에 설치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또 주택 대부분이 남향이어서 계량기는 출입문이 있는 북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겨울철 동파가 쉽게 일어난다.
서울시 종로에 사는 이모씨는 “관 녹이는 업체를 부르면 15만원 이상 줘야 한다”며 “서민이 돈이 어디 있나.. 계량기를 내 돈 주고 교체하면... 그것도 같이 녹여줘야... 그런 게 바로 서민 정책이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 계량기 적정 수온 기준 '0.3~30℃'..동파될 수 밖에 없어
수도계량기 설치와 이용은 정부에서 하고 관리는 '각자 알아서 하라'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매년 일어난 동파에 대한 계량기 기준이 아예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에 명시된 계량기 적정 수온은 0.3~30℃다. 올 겨울 영하 10℃ 이하의 날씨가 16일 이상 지속됐던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 없는 기준이다. 동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게다가 이 기준은 전국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연 평균 기온 차이가 14℃나 되는 강원도 대관령과 제주도 서귀포에 이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이와 관련 상수도본부 관계자는 “동파방지 제조 기준은 국제적 기준도 없고 법령도 없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계량기 생산 업체 "동파방지용 계량기 정부나 업체들 찾지도 않아"
그나마 최근에는 동파방지용 계량기가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최초 설치할 때 각 지자체의 상수도 사업본부는 계측이 더 정확하다는 이유로 동파방지에 유리한 건식보다는 습식을, 건설사마저도 단가를 이유로 물이 여러 군데로 흐르는 복갑보다는 단갑식을 선호하고 있다.
수도계량기를 제조판매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수도계량기 가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다”면서 “정부나 시공업체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전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계속 생산 할 수 밖에 없고 다른 제품에 대한 투자도 힘들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캐나다, 원격식과 건식을 혼합해 계량기 동파 염려 없어
수도관 동파에 민감한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캐나다에선 원격식(Remote Reading-미터의 지시량을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전송선을 따라 멀리 떨어져 있는 지시부에 전달하는 방식)과 미터에 직접 물이 들어가지 않는 건식이 혼합된 계량기가 정부 주도하에 대중화 돼 있어 계량기 동파사고가 거의 없다.
서울 산업대학교 김영일 교수는 “외국 같은 경우엔 보온이라든지, 열선 이런 것들이 잘 되어있지만 우리나라 것은 문제가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은 영도 이하가 되면 얼고, 얼게 되면 부피가 팽창하는데 그런 것들이 감안되지 않았다”며 계량기 설치방법에 대해 지적했다.
매년 반복되는 수도계량기 동파사고. 사용주체인 정부와 시공자인 건설업체의 편의에 의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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