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중고명품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정품 감정 문의가 올라온다.
지퍼, 로고, 영수증 등 물건의 상세사진을 올리면 명품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진품 또는 가품(일명 짝퉁)을 판별해 내는 식이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구찌, 셀린느 브랜드의 가방에 대한 문의가 제일 많이 들어온다. 정품과 다름없는 외관에 보증서까지 갖췄지만, 전문가들은 대부분 가품 판정을 내렸다.
명품감정사 이모씨는 “요즘 몇몇 온라인 마켓을 통해 버젓이 위조품이 유통되고 있다”며 “스크래치(흠집) 상품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정가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에 위조 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폭탄 세일 난무하는 인터넷 명품 사이트, 과연 진짜일까?
위조품을 제작, 유통하는 행위는 엄연히 상표법 위반에 해당된다. 연일 수십, 수백억대의 밀수품을 적발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지만, 아직도 온라인에서는 위조물품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더욱이 각종 사이트의 광고 형태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 클릭 몇 번이면 손쉽게 위조품을 구입할 수 있다.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명품 브랜드 제품을 할인가에 판다는 광고들이 수십개가 올라있다. 가방 사진과 함께 ‘80% 할인전’, ‘정품 최저가’, ‘인기 상품 재입고’ 등 소비자의 눈길을 끌 만한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노출된 광고를 클릭하면 온라인 쇼핑몰로 이동된다. 구찌백을 비롯해 백화점에서 100~2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수십 가지 종류의 가방들이 불과 20만~30만 원대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에 입고되지 않은 디자인이나, 품절돼 더는 구할 수 없는 물건까지 확보해 놓고 있었다.
온라인쇼핑몰 운영자에게 연락해 물건 가격이 왜 이렇게 저렴한지를 묻자 “재봉이 불량하거나 흠집이 생겨 정가에 판매하기가 어려운 제품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품 여부에 대해서도 “수입신고필증을 공개하는 만큼 정품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5곳의 사이트를 취재한 결과 모두 같은 디자인의 명품 가방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대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나같이 ‘하자가 있어 가격이 싸지만 분명히 정품이 맞다'고 주장했다.
과연 판매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명품 업체 관계자들은 “파격적으로 싼 가격표가 붙어있는 제품은 거의 다 가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직접 해당 사이트를 방문해 물품 리스트를 살펴보던 구찌 관계자는 “매장가 200만 원짜리 숄더백이 40만 원에 팔리고 있다니 황당하다”며 “가격만 봐도 정품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마 대형 포털 메인화면에까지 이런 가짜 상품 광고가 버젓이 올라있는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또 다른 해외 명품업체 프라다 관계자도 “수입경로가 워낙 다양해 유통마진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게 책정될 수는 있어도 이 정도까지 가격이 내려갈 수는 없다”며 “불량이 발생하면 내부방침에 따라 본사에서 일괄 처분하고 있기 때문에 하자 상품이 시중에 유통될 확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작년 위조품 판매사이트 850곳 폐쇄
이처럼 정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상품이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팀 조종호 사무관은 “온라인상에서 위조품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 단속은 실제 물건을 입수해 진품, 가품을 구별하지만 온라인 판매는 물건의 사진을 보고 진품, 가품을 판단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며 “정가에 비해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무조건 가품이라고 단정하긴 곤란하다”고 밝혔다. 결국 판매자로부터 가품판매를 인정하는 취지의 증거를 확보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십중팔구는 하자상품, 홍콩 아울렛에서 싸게 들여온 상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는 위조품 적발도 문제다. 조종호 사무관은 “카페 운영자들이 적발을 피하기 위해 정부기관의 인터넷 주소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놓는다”며 “일부러 구매자로 위장해 가품 판매를 인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거를 확보했다고 해서 모두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허청이 위조품 판매사이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물을 준비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면,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세밀한 조사를 거쳐 사이트 폐쇄조치를 내린다. 작년 기준으로 2000여건의 제보가 들어왔고, 이 가운데 850여 건이 폐쇄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사이트 폐쇄 이후 또 다른 사이트를 개설하거나 타인의 명의로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등 위조 상품 판매 사이트는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서버를 해외에 두는 경우는 속수무책이다.
◆소비자들도 가짜인줄 알고 구매...단속 어려워
서울시 중구 사이버 수사대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명품의 가격대를 살펴보면 가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판매하는 물건을 확보해 정식으로 감정하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구매자들도 대부분 정품이 아니라 정교한 위조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물건을 사기 때문에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짝퉁 업체‘들은 포털의 검색광고를 주요 영업도구로 활용한다. 포털 검색 창에 위조품을 뜻하는 이미테이션, SA급, 홍콩명품 등을 입력하자 수많은 사이트가 검색됐다. 한 포털은 취재가 시작되자 문제의 명품 광고를 삭제하기도 했다.
국내 포털 광고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제보자는 “포탈사이트의 입점 심사는 지극히 형식적”이라며 “수입 면장 같은 서류만 확인할 뿐 실질적으로 판매되는 물품을 감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의 정지연 조사연구팀장은 “포탈사이트에서 위조품 판매사이트를 광고한다고 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사업자의 신원이나 판매물품의 검토 모두 도의적 책임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고 수입을 얻는 만큼 구매자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할 것” 이라며 “우리나라의 대형 포털사이트가 사기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