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뮤지컬 영화 시카고로 아카데미 어워드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쓴 롭 마샬은 이번에도 뮤지컬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2009년의 마지막날 새해를 맞으며 개봉한 영화 나인이 바로 그것.
니콜 키드만,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마리온 코티야르, 소피아 로렌, 케이트 허드슨, 스테이시 퍼거슨. 내로라하는 7색 여배우의 캐스팅만 봐도 뮤지컬 영화 나인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7명 각자의 화려한 의상과 춤, 무대와 조명, 그리고 남주인공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와 노래는 뮤지컬인지 영화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귀도는 한 때 잘나갔던 흥행감독이자 당대의 절색 여배우, 요염한 정부, 과거 유명했던 여배우이자 사랑스런 아내 등 많은 여인들과 애정을 주고받는 바람둥이다. 그는 아홉 번 째 작품을 준비하려 하지만 전작들의 흥행실패로 인한 압박과 복잡한 사생활에서 오는 갈등으로 결국 영화를 접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 그러나 그들과의 애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9번째 영화에 성공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영화 나인은 다소 단순한 스토리 전개를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여주인공들의 삶과 그들의 심정을 담은 다채로운 노래들은 작품 자체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극 중 바람둥이 영화감독의 아내 루이사 역을 맡은 마리온 코티야르의 “My husband makes movie(내 남편은 영화를 만들어요).”라는 노랫말이 슬프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앞선 영화 시카고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여주인공 록시와 밸마의 호소력 있는 노래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처절한 배신감을 선명히 전달해 주기에 충분하다.
롭 마샬은 대사가 아닌 노래와 음악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뮤지컬 마법’을 시카고에 이어 이번 나인에서도 부린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 색깔 넘치는 여배우들이 ‘보는 화려함’이라면 그들의 풍성한 노래는 ‘듣는 화려함’이라 할 수 있다. 시각과 청각의 절묘한 연출이다.
롭 마샬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뮤지컬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슬픈 현실이지만 뮤지컬 영화 같은 장르 영화는 앞서 유사한 장르의 작품이 성공하면 뒤에 나오는 작품도 그 평가를 따라 받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도 뮤지컬 영화는 지난 20년간 좋은 평을 받아왔다. 그래서 매우 부담이 크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잘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그의 예상은 과연 적중했다. 영화 나인은 미국 방송영화 비평가 협회의 베스트 필름 상과, 국제 비평가 협회 뮤지컬 영화부문 작품상, 2009년의 베스트 10 필름상 등을 수상했다. 그가 ‘뮤지컬 마법’을 영화에 부릴 때마다 수많은 상과 뜨거운 호응이 뒤따른 것.
롭 마샬과 뮤지컬의 인연은 1999년 텔레비전 용 뮤지컬 영화 “애니(Annie)”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릴 적에 고아가 되어버린 명랑 소녀 애니와 돈을 노린 고약한 고아원 어른들 사이에 일어나는 꼬마 소녀의 좌충우돌 탈출기이다. 유쾌한 웃음과 가슴 따뜻한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 롭 마샬은 이 작품으로 에이미(Emmy Awards) 연출상을 비롯해 미국 연출가상 등을 수상해 단번에 주목을 받았었다.
그의 처녀작 애니에 비해 2002년 작품 시카고는 상당한 진보를 보였다. 스토리의 탄탄함도 그렇거니와 풍성하고 화려한 색채와 노래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였다. 그러나 이번 나인은 전 작 시카고에 비해 두드러진 발전이 보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어두운 배경색에 화려한 조명이라는 유사한 구조의 색채 때문에 지금 보는 영화가 시카고인지 나인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여주인공 중심의 스토리 전개 구조도 또 다른 유사점. 전작과 확연히 구분될만한 무언가가 빠진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롭 마샬의 다음 뮤지컬 영화 작품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만이 가진 ‘뮤지컬 마법’ 때문. 이미 롭 마샬은 2011년 캐리비안의 해적 4, “On Stranger Tides(낯선 조류)”라는 비 뮤지컬 영화를 맡았지만 장르를 번갈아 선택하는 그의 성향을 볼 때 곧이을 네 번째 뮤지컬 마법이 기대된다.
롭 마샬은 1999년 애니와 2002년 시카고에 이어 이번 나인이 뮤지컬 영화만 세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