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에서 한국이 가장 경쟁력 있는 스포츠와 열악한 종목은 무엇일까. 한국 스포츠의 종목별 경쟁력을 비교하기 위해 본지는 대한체육회 가맹 55개 종목의 세계랭킹을 조사했다. FIFA(국제축구연맹), IBAF(국제야구연맹) 등 종목별 세계단체가 산정하는 랭킹을 최우선으로 조사했고, 랭킹 시스템이 없는 종목은 최근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순위를 근거로 삼았다. 먼저 야구·축구·농구 등 국가별로 순위가 매겨지는 9개 팀 스포츠의 세계 경쟁력을 살펴봤다.

스포츠의 국내 인기도와 국제무대 경쟁력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국내 스포츠 '빅4'인 야구·축구·농구·배구는 안방에선 팬을 몰고 다니지만 국제무대의 위상은 종목별로 큰 차이가 있다. 야구는 IBAF(국제야구연맹) 랭킹 4위로 한국의 팀 스포츠 중 가장 세계 랭킹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축구는 야구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을 감안하더라도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52위 수준이다. 반면 남자 하키(5위)와 여자 핸드볼(6위)처럼 해외에 나가야 어깨를 펴는 종목도 있다.

활짝 웃는 야구, 울상인 남자 농구

한국 야구가 세계 랭킹 4위에 오른 데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지난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이라는 '연타석 홈런'이 결정적이었다. 국제 대회의 선전은 곧바로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몰이로 이어졌고, 프로야구는 지난해 역대 최다인 592만 관중을 동원했다. 이진형 KBO(한국야구위원회) 홍보부장은 "국내 리그의 경쟁력과 국제 대회 성적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프로 리그가 운영되는 종목 중에는 야구와 함께 여자 농구가 세계 랭킹 톱 10(FIBA 랭킹 9위)에 들었다. 여자 배구(13위)와 남자 배구(17위)의 세계 랭킹도 상위권이다.

하지만 국내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인 남자 농구와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낸 남자 축구의 세계 랭킹은 크게 부진했다. 특히 남자 농구는 전체 75개국에서 27위로 해당 스포츠를 하는 국가 중 상대적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백분율 순위(상위 36.5%)가 가장 나쁜 종목 중 하나였다. 최근 남자 농구 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2009년 아시아선수권 4강 탈락 등 국제 대회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남자 농구보다 백분율 순위가 떨어지는 팀 스포츠는 아이스하키와 컬링뿐이었다. 남자 축구는 전체 207개국 중 52위로 백분율 순위는 상위 25.1%였다.

남자 하키와 여자 핸드볼의 선전

남자 하키 국가 대표선수 중 한 명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는 4년마다 한번씩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올림픽 성적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남자 하키는 FIH(국제하키연맹) 랭킹 5위로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가장 인정받는 종목 중 하나이다. FIH 랭킹에 올라 있는 73개국 중 상위 6.8%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이번에 세계 랭킹을 조사한 팀 스포츠 중에서 백분율 순위가 상위 10% 이내에 든 종목은 야구(5.3%)와 남자 하키뿐이었다.

남자 하키 대표팀은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지난 5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12월엔 '세계 6강'만 초청받는 챔피언스트로피대회에 출전해 3위에 올랐다. 한 하키 관계자는 "상무를 포함해 남자 실업팀이 단 4개뿐인 한국이 하키 리그만 6개가 운영되는 독일(세계 1위) 등과 경쟁하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1988년 서울, 1996년 애틀랜타 등 두번이나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던 여자 하키는 최근 성적 부진으로 세계 랭킹이 11위까지 밀려났다.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모델인 여자 핸드볼도 한국의 강세 스포츠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올랐다. 대한핸드볼협회는 "IHF(국제핸드볼연맹)가 별도의 랭킹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아 세계선수권 성적이 세계 랭킹으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핸드볼은 랭킹 산정의 기준이 되는 전체 국가의 수를 알 수 없어 백분율 순위를 매기지 못했다.

팀 스포츠에서도 빛난 우먼 파워

한국 스포츠의 '여성 파워'는 팀 스포츠 세계 랭킹 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핸드볼을 비롯해 여자 농구(9위), 여자 배구(13위), 여자 컬링(13위), 여자 축구(21위) 등 하키를 뺀 대부분 종목에서 여자 대표팀의 세계 랭킹이 남자보다 상위에 올라 있었다. 물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 여자가 남자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는 사실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한국 팀 스포츠가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모두 13개(금 3·은 7·동 3)다. 이 중 10개(금 2·은 6·동 2)가 여자 대표팀이 일궈낸 것으로 핸드볼·하키·농구·배구가 모두 메달 경험이 있다. 남자 대표팀이 올림픽 메달을 딴 종목은 야구(금 1·동 1)와 하키(은 1)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