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닭잡이 폭스'와 '악질 농장주 3인방'의 한판 대결 |
'로열 테넌바움' '스티브 지소와 해저생활' '다즐링 주식회사'를 만든 웨스 앤더슨은 이른바 한정판 감독이다. 국내에서 그의 영화들은 늘 비디오나 DVD로 직행했고, 그나마 개봉해도 거의 단관 개봉 수준. 하지만 한 번 맛들이면 꼭 챙겨보게 된다. 유난히 환상적이고 꿈결 같은 색감을 자랑하는 비주얼과 특이한 유머 코드 때문일까? 많은 창작자들에게 독특한 영감을 주는 그의 신작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앤더슨이 처음 연출한 애니메이션이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원작자 로알드 달의 1970년 동명 동화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첫 술에 이렇게 배부를 수가 있나.
한때 아내와 쌍으로 닭장을 급습하던 최고의 닭잡이 미스터 폭스가 은퇴한 지도 12년이다. 지역 신문 칼럼니스트로 전업해 지하 여우굴에서 살던 그는 어느 날 전망 좋은 나무 집으로 이사한다. 나무 집 너머엔 순악질 인간 농장주 3인방 보기스, 번스, 빈이 운영하는 농장들이 있다. 그걸 본 미스터 폭스의 야생 본능이 다시 불타오른다. 급기야 낮엔 아내와 아들 애쉬, 조카 크리스와 함께 전원생활을, 밤엔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3인방의 농장을 차례로 습격한다. 이에 분노한 농장주 3인방은 그를 잡으려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2009년 최고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혜성처럼 등장한 복병이다. 풀 3D가 압도하는 스크린에서 신선도로만 따지면 최고다. 미스터 폭스가 갓 잡은 닭처럼. 농장 침입 과정은 마치 '오션스 일레븐'의 유쾌한 은행털이를 연상케 하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움직임이 액션의 한계를 창의적으로 뛰어넘는다. 궁지에 몰려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해결책을 찾는 미스터 폭스의 처세술도 판타스틱하다.
농장주 3인방이 집을 무너뜨리자 그는 온가족과 땅을 파서 더 깊은 지하로 숨어들고, 주변 동물들을 진두지휘해 탈출의 해법을 발견한다. 삶은 노력하는 그에게 놀라운 행운의 반전을 연거푸 선사한다. 그리고 제 본성대로 사는 게 중요함을 역설한다. 미스터 폭스의 한마디, "여우가 닭을 잡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나?"라는 말은 그래서 가슴을 친다. '오션스 일레븐'의 대니 오션처럼 느긋하고 멋들어진 미스터 폭스 역의 조지 클루니, 우아하고도 쿨한 미세스 폭스 역의 메릴 스트립 등 목소리 출연진도 쟁쟁하고 훌륭하다. 필 충만한 사운드에, 전체 관람가지만 어른들이 더 반할 만큼 전방위적으로 세련된 감각과 짜임새를 지닌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첫 애니메이션이 이 정도라니... 웨스 앤더슨, 앞으로 계속 좀 만들어주시면 안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