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20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TBS TV 공개홀에서 의미있는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일본유선대상인데요.

일본유선대상은 NHK가 매년 그해 최고의 가요스타만을 출연시키는 '홍백가합전' 및 음반판매기록 등을 집계하는 레코드대상과 함께 연말 3대 메이저 가요행사 중 하나입니다. TBS가 2시간에 걸쳐 생방송으로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전국민의 절반 가까이 시청할 만큼 일본 시청자들의 관심과 열기는 대단합니다.

42회째를 맞은 올해 유선대상에선 사상 처음으로 한국 가수가 두 팀이나 포함돼 국내 가요팬들에게도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일본 가요계의 '의미있는 행사'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기자 역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애초 기자는 이 시상식을 국내 케이블 TV의 한 음악상 시상식 정도로 폄하했던 게 사실입니다. 태진아(장려상)와 빅뱅(신인상)이 상을 받기 전까지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게 없었으니까요. 수상자들도 소속사의 입김이나 방송사와의 특별한 관계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늘 뒷말이 많았던 국내의 각종 가요상 시상식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일본인 가요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야 그게 오해란 걸 알았습니다. 일본유선방송협회가 주최하는 유선대상은 그해 해당가수의 노래가 얼마나 가요팬들한테 다가가고, 얼마나 호응이 있었느냐를 객관적으로 집계해 선정하는 상입니다. 노래가 방송을 많이 타고, CD가 많이 팔리고, 신청곡 횟수가 얼마나 많았느냐가 관건인 셈이죠.

태진아의 경우는 지난 8월 싱글음반 '스마나이'(미안하다)란 곡으로 데뷔한지 불과 4개월만에 상을 받은 특별한 주인공이 됐는데요. 사실 그가 국내에선 30년 넘게 정상가수로 활동했다곤 해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일본에서는 전혀 별개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활동하는 가수만 2만명에 이른다는 일본에서 총 14명의 수상자중 한명에 끼었다는 사실만으로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 비춰 '아이돌 스타도 아닌 성인가수가 과연 4개월만에 가능한 일일까'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태진아는 일본 '전국유선방송 최단기간 1위 등극' '최장년 데뷔가수의 최장기 1위(6주)' '일본인들이 가라오케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 베스트 10'에 오를 만큼 일본 가요팬들로부터 객관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수상 직후 태진아는 '일본인들이 특별히 한국가수 태진아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엔카가수들의 경우 대부분 꺾어올리는 고음처리에 약하고, 저의 허스키하고 감성적 창법이 색다르게 다가가는 것 같다." 80년대 이후 일본 가수들중에서 거의 없던 스타일의 목소리가 태진아라는 한국가수를 통해 다시 접하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태진아가 발표한 '스마나이'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미안하다'는 내용의 노랫말을 담은 애절한 곡입니다.

태진아의 화려한 의상 스타일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 남자가수들은 대개 색깔이 튀지 않는 점잖은 옷차림으로 무대에 섭니다. 기껏 흰색이나 하늘색 정장차림이어서 우리와 비교하면 '정말 가수가 맞나?' 할 정도입니다.

처음엔 태진아도 이런 옷차림으로 방송출연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와 같은 화려한 원색 스타일은 일본 시청자들한테 거부감을 준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태진아의 노래가 주목을 받으면서 NHK '가요콘서트' 출연을 계기로 모험을 시도했고, 결국 금기도 깨졌습니다. 아무리 한국에서 정상급 가수라도, 50대 후반의 태진아가 신인급 가수로 다시 출발한 일본에서 금방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태진아의 성공엔 특유의 친화력도 한몫을 했겠지만 알고보면 모두 그의 남모른 노력과 집념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진아의 일본 진출 성과에 의미를 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