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생·한림원 전문용어표준화연구팀장

며칠 전 한 독자가 인도의 커리와 일본화된 카레에 대한 용어가 혼용되고 있는데 원산지의 커리라는 말로 통일해서 표현하는 것이 그 국가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해주었다(12월 25일자 A25면). 우리나라의 외래어 표기법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어서 본인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바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같은 투고문에서 채소라는 뜻으로 야채라는 말을 쓰고 있어서 이 문제를 한번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나물이나 푸성귀라는 물건들에 대한 용어를 채소라고 하는 대신 많은 신문이나 방송, 나아가 식당이나 가게에서 야채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도 야채와 채소라는 단어들이 기록에서 확인되고 일반 민중은 나물이나 푸성귀라는 말들을 지금까지도 써 오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는 주로 남새·채소 등으로 불려 왔다. 조선시대의 채소는 대부분 산나물(山菜)과 들나물(野菜)이었기 때문에 기록문헌상에 들나물이라는 뜻의 한자용어인 야채(野菜)라고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대의 나물은 산이나 들에서 채집하거나 간단히 재배한 것보다는 대부분 전문적으로 키운 식물들로 관련 전문학과나 연구소, 또는 전문학자들은 채소원예학(菜蔬園藝學)이라는 분야로 강의하고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야채원예학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채소(菜蔬)·소채(蔬菜)·야채(野菜)라는 한자어는 동양 3국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국은 소채로, 일본은 야채로, 한국은 채소로, 북한은 남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 채소시장에 가보면 채소라는 말과 야채라는 말이 함께 쓰이고, 야채라는 단어의 사용빈도는 더 올라가는 안타까운 인상을 받는데 여기에는 매체와 일본에서 요리전문훈련을 받고 온 우리나라의 요리전문가들이 기여하고 있지 않은가 여겨진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연과학분야의 우리나라 전문용어 표준화 사업에서 vegetable은 채소와 남새 두 가지로 표준화했다. 남새라는 말은 제주지역과 남부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이 단어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순수한 우리말로 나물(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자체나 이들을 삶거나 볶거나 또는 날것으로 양념하여 무친 음식)과 푸성귀(사람이 가꾼 채소나 저절로 난 나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라는 말도 있지만 현대판 채소라는 의미에는 미치지 못해서 채소 또는 남새로 표준화했다. 따라서 조선일보를 위시한 국내 매체, 시장, 식당들에서는 뜻도 쓰임새도 맞지 않은 야채·들나물을 고집하지 말고 채소나 남새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