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행운의 편지'가 화젯거리다. 최초 발신자는 삼성전기 박종우 사장이다.
서울신문 12월 18일자 보도
'이 편지를 △명에게 ○일 안에 보내면 행운이 올 것이요. 이 편지를 그냥 버린 케네디 대통령은 9일 후 암살당했습니다.' 겉보기엔 행운을 주는 것 같지만 협박이나 다름없는 이런 '행운의 편지'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체인 레터(chain letter)'라 불리는 행운의 편지의 역사는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본(寫本)을 더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전달해달라고 적은 것들 모두를 행운의 편지 범주로 넣을 경우 기원은 중세시대에 이른다.
'5명에게 보내라'는 식으로 숫자를 특정하고 '몇 시간 안에'같은 데드라인(deadline)을 정한 형태는 100여년 전 처음 나타났다. 국내에는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 일간지가 1922년에 '이것을 아홉장의 엽서에 기록하여 그대가 호운(好運)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보내라. 아흐레만 지나면 좋은 운수가 돌아올 것이오. 만약 끊으면 크게 악운이 있다'는 엽서가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일본 비밀결사에서 동지끼리 주고받은 암호가 국내까지 전해진 것이라든가, 체신국에서 엽서를 많이 팔려 꾸며냈다는 추측이 돌았다. 1939년에는 또 다른 일간지가 행운의 편지에 빠져든 여성들을 질책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각국에서 떠도는 행운의 편지는 모두 같은 내용일까. 행운의 편지를 내용에 따라 행운·자선(慈善)·청원(請願)·송금(送金) 등으로 유형화하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서양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단순히 행운을 비는 편지는 기도문을 널리 뿌리는 것에서 비롯됐다. 천국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보내면 행운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내용이었다. 'A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식의 행운의 편지는 1888년 등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쓸 수 있도록 10센트나 소정의 물건을 지정된 주소로 보내주고 편지 사본을 4명의 친구들에게 전해달라는 식이었다. 행운과 자비가 결합된 형태가 돈을 요구하는 행운의 편지다.
'10센트 보내줘(Send-a-Dime)' 편지로도 불리는 이것은 미국에서 1920~30년대 유행했다. 편지에는 지금까지 거쳐간 인명 목록이 적혀 있는데 맨 윗사람에게 10센트를 송금한 뒤, 똑같은 편지를 만들어 자기 이름을 적고 대신 맨 윗사람 이름을 지워 다른 사람들에 보내라는 것이다.
그렇게 편지가 돌아 당사자 이름이 목록 맨 위로 가면 1만5625명으로부터 15만6250센트를 송금받는다는 식이다. 일종의 금융 사기 피라미드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국내에도 1935년에 같은 형태의 행운의 편지가 대유행했다.
명의가 '불경기퇴산 통신무진 행운구락부'로 된 이 편지에는 받은 사람은 이틀 내 같은 내용의 편지를 5명에게 보내고 제일 먼저 기명된 사람에게 10전씩을 보내라고 돼 있다. 당시 경찰은 최초 발신자에게 과료 1원을 물렸다.
청원이나 사상 전파를 위한 행운의 편지도 있다. 1903년 미국에선 미성년자에게 담배판매를 금지하는 청원을 요구하는 편지가 돌았다. 수신인 등 거쳐간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병기돼 증식돼 나가는 형식을 빌린 것이다.
1927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캘빈 쿨리지를 뽑아달라는 내용의 행운의 편지도 나돌았다. 1996년엔 당시 김영삼 대통령 비방과 편지 사본을 5명에 보내야 행운이 온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도는 등 행운의 편지가 정치적 사상과 신념을 전파하는 도구로 쓰인 예는 더 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쓰인 이유가 '꺼림칙하다'는 미신 때문만일까. 수학적 이유도 있다. 예컨대 기한을 하루로 잡고 3명에게 발송하라고 한 행운의 편지는 열흘 만에 수신인이 2만9524명이며, 보름이면 717만4453명에게 올 수도 있다.
화제가 된 박종우 사장의 편지엔 '돈으로 행운을 살 수 없으니 돈을 보내지는 마시오'라는 문구가 있지만 '96시간 4일 안에 보내시오. 1967년 브루노는 이 메시지를 받았으나 단지 웃어버린 후 버렸다 며칠 후 아들이 아프게 되었다'는 등의 내용은 전형적인 틀을 답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