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크리스마스는 다행히 쉬는 날 이에요 그날은 애들 엄마랑 애들이랑 처가에 좀 다녀오려고요 제가 항상 등대에 매여 있으니까 매번 애들 엄마 혼자 찾아다녔거든요? 말은 안 해도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올해로 9년째 등대를 지켜온 고승철(38)씨는 가족과 함께 할 크리스마스 계획에 한껏 들떠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댓불을 밝혀야 하는 그의 일상에 소소한 여유가 허락된 셈이다.

명절, 휴일이 아예 남의 일 같았다는 그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더욱 각별하다. 모두가 쉬는 휴일에도 묵묵히 바다를 지켰던 고씨는 등대만큼이나 외롭지만 훈훈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동차 정비사가 되고 싶었던 등대원의 아들

등대에서 고씨는 태어났다. 등대원이었던 아버지는 첫 부임지 부산 가덕도 등대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고씨를 얻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등대 관사에서 자랐다는 그는 절대로 등대지기만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열악한 근무여건과 냉소적인 사회 시선을 일찌감치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문대에 들어간 아들에게 아버지는 끊임없이 등대원이 될 것을 권유했다. 꼼꼼하고 내성적인 아들의 성격과 등대관리일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예. 전문대에 다니는 내한테 확신이 없어서 그러는 줄 알고 편입공부까지 해서 부산외대에 들어갔능교. 그래도 계속 등대원이 되라고 안 합디꺼."

기계공학을 전공해 자동차 정비사가 되고 싶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단념시키기 위해 또 동아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숙모의 장례식날,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했다. 기계, 전기, 전자 등 관련 자격증을 준비해 1년 만에 등대원이 된 그는 2001년 강원도 속초 등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오륙도, 가덕도 등대를 거쳐 지금은 태종대유원지 내에 영도 등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 신분은 국토해양부 기능직 공무원

흔히 말하는 등대지기의 정식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이다. 등대가 항로의 표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항로표지관리원은 국가 공무원으로 기계, 전기, 전자 등 관련자격증을 소지한 자를 대상으로 특별채용 한다. 그의 현 소속 역시 국토해양부 부산지방해양항만청이다.

다른 항로표지관리원과 마찬가지로 고승철씨도 형상, 광파(야간 등화), 전파, 음파 등에 관련된 각종 신호 장치를 조작해 선박에 등대의 위치를 알리고, 그 밖의 전반적인 등대시설 관리 업무를 맡는다. 각종 수리 공구를 다루느라 손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지만 35m나 되는 등 탑 시설물을 점검하다 추락할 뻔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고씨가 근무하는 영도 등대는 부산 최초의 유인(有人)등대로서 부산에 있는 등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 등대는 2004년 낡은 시설물을 교체하면서 예술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을 갖춰 '영도해양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고승철씨는 "영도해양문화공간이 생긴 후 관광객과 부산 시민 모두 자유롭게 등대를 드나들며 바다 경관은 물론 예술작품 관람, 해양 정보에 대한 영상까지 접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대신 해양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만큼 일반 다른 등대에 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미술 전시회, 등대 음악제, 등대 학교 등 주기적으로 열리는 행사 준비는 물론 등대 내 갤러리, 도서실 전망대의 시설을 관리해야 하는 등 부수적인 일이 적지 않다.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태종대유원지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만큼 '다쳤으니 약을 발라 달라''잃어버린 카메라를 찾아 달라' 는 등의 소소한 민원도 그의 몫이다.

이렇게 등대 시설, 예술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 총 3개 동으로 구성된 영도해양문화공간은 총면적이 720㎡(약 218평). 하지만 배치된 인력은 고작 4명이다. 이들은 2인 1조로 편성돼 격일제로 근무하는데, 한 명씩은 돌아가며 야간 당직을 서기 때문에 4일에 한 번 꼴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밤을 새워야 한다.

오씨는 밤을 꼬박 새우는 동안 영도 등대 시설물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근에 있는 생도 등대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는 "영도 등대와 오륙도 사이에 있는 유도 등부표는 부산항 입출항의 기준이 되는 만큼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눈이 빨개지도록 주시하고 있다"며 미소지었다.

◆자살바위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살려달라며 유리창 깨기도

한편 영도 등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자살바위'는 영도 등대지기들이 겪은 각종 으스스한 체험의 근원이다.  자살바위는 태종대 유원지 내에 있는 절벽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몸을 던진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자살바위를 찾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2000년대 초반, 난간을 설치하는 등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자살방지대책을 세우기도 했지만 하지만 아직도 한 해에 3~4건씩이 사고가 벌어진다.

"밤에 당직을 서면 무서운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오후 6시쯤 날이 어둑어둑해지는데 혹시나 싶어 내려다보니까 자살바위 중간에 누가 딱 걸쳐져 있잖아요. 얼매나 놀랐는지 또 지난 여름에는 당직을 서던 다른 직원이 밤 9시쯤 돼서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래요.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가 봤더니 등대도서관 유리는 다 깨졌고, 그 주변에 어떤 남자가 피범벅이 돼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더랍니다. 자살하려고 뛰어내렸다가 크게 다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살겠다고 등대까지 올라왔다고 오죽하면 내 여기 있다고 알리려고 돌로 도서관 유리를 안 깼겠습니꺼? 목숨은 건졌는데 시설물 파괴 비용으로 100만 원이나 냈습니더."

◆‘아빠’ 대신 ‘아저씨’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섭섭할 때도

굳건해 보이는 등대, 하지만 등대지기는 떠돌이 신세다. 2~3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근무처를 옮겨야 하는 만큼 열악한 근무 환경이다.

"영도등대는 접근성이 높아서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에요. 하지만 오륙도 등대는 진짜 고립된 섬이거든요? 거기는 식수 자체가 없어요. 지금은 정수기가 있지만, 제가 근무할 때 까지만 해도 20리터 약수통에 식수를 떠가서 밥해먹고,  물마시고 다 했어요 한번은 태풍이 오는 바람에 꼬박 5일 동안 등대에 갇힌 적이 있었어요. 그때 물 아껴먹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좁은 등대에 갇힌 채 맞는 태풍, 오직 겪어본 등대지기들만이 말할 수 있다.

"태풍이 오면 위험해서 며칠이고 등대 문을 못 열어요. 전자기기가 많아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감전 위험도 있고 오죽하면 등대 문이 이중 철문이겠어요? 유리창 깨질까봐 테이프를 붙이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 해요. 그만큼 등대일이 험해요."

아내가 둘째아이를 출산하는 동안에도 홀로 바다를 지켜야 했던 고씨는 "내 직업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겪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일주일씩 상주근무를 했던 가덕도 등대원 시절에는 손수 떡국을 끓여 먹으며 새해를 맞았고, 크리마스에도 오붓하게 등대체험을 나온 가족들을 바라보며 화장실 휴지통을 비워야 했다. 고씨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도 어린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린 애들은 금방 사람을 잊어버리잖아요? 한창 아빠라고 부르다가도 일주일 후에 나타나면 나보고 또 아저씨래요.  내가 좀 안아보려고 하면 제 엄마한테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요. 얼마나 섭섭하던지 그래도 요즘은 하루걸러 한 번씩 보니까 좀 낫죠."

소수 인원으로 유지되는 등대의 특성상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고씨는 식구들의 대소사를 모두 인근에 사는 누님이나 매형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조상 제사를 모시는 충남 가의도 큰집을 못간 것도 벌써 여러 해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솔직히 크다.

"등대에도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점차 상주 인원이 필요 없는 실정"이라는 고씨는 "유인등대가 무인등대로 바뀌어 가는 상황이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전국에 있는 무인등대가 2400곳이 넘는 대에 반해 유인 등대는 41개뿐이다. 공무원 감축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는 그는 기능직 공무원의 처지에 서글픔을 느낀다고도 했다.

하지만 등대원 생활 중에 가장 뿌듯했던 적이 언제냐고 묻자 고씨의 얼굴에는 이내 화색이 돈다.

"부산, 진해 사이에 항구가 하나 있어요. 그 항구 사이로 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한 번은 멸치잡이 어선이 항구 한 가운데서 멸치 떼를 끌어올리고 있더라고요 그게 정말 위험한 상황이거든요? 컨테이너 선박 같은 건 규모가 워낙 커서 함부로 멈추지도 못하는데 잘못하다 충돌이라도 나면 큰일이잖아요. 가덕도 등대에 있다 발견해서 얼른 해양경찰서에 신고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등대원은 안전하게 배 드나들라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하하하"

배의 안전한 드나듬을 지킬 수 있어 행복하다는 고씨는 어쩐지 ‘항로표지안내원’보다는 ‘등대지기’가 어울렸다. 얼어붙은 거센 파도 속에서도 빛난다는 그들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 때문에.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