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하던 케이블 TV ‘엠넷(Mnet)’ 관계자가 “이 친구가 주왕이에요”라고 말했다. 고개를 돌리니 흰색 티셔츠 위에 카키색 점퍼를 걸친 청년이 인사했다.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은 김주왕(23)씨의 맨 얼굴에는 사춘기 소년같은 여드름이 돋아 있었다.
- 오랫동안 태권도를 했다고 하던데요?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했어요. 모스크바 국제대회에서 3등한 적도 있고, 국내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었죠. 어렸을 때는 외국에 나가서 품세 시범을 보이기도 했어요.”
- 왜 태권도를 계속하지 않았어요?
“부상이 많았어요. 지금 왼쪽 쇄골 부위에 철심이 4개 박혀있어요. 부비농(코밑 뼈에 염증) 때문에 큰 수술도 받았었고요. 부비농이 심할 때는 눈 앞이 갑자기 뿌옇게 변해서, 사람이 다 흐릿했어요. 뭐, 발목 안 좋고 그런 건 기본이었죠.”
부상 얘기가 나오자 밝았던 얼굴에 그늘이 졌다.
- 태권도 그만둘 때 기분이 어떠했습니까?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어요. 뼈가 부러져도 철심 박아가면서 했는데, 그게 갑자기 한번에 내려앉으니까.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도 결정되어 있던 상황이었는데... 살아오면서 그렇게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나? 잠을 자려고 누워도 안 좋은 것들이 눈앞에 그려져 시체처럼 누워있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한 3달 정도 가더라고요.”
김주왕씨는 태권도를 유치원에서 처음 접했다. 재미가 있어 초등학교 때도 배우려고 했는데, 부모가 반대했단다. 꼬깃꼬깃한 세뱃돈을 모아쥐고 태권도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 그래서 가수를 하겠다고 도전한 겁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수도 꿈 중 하나였어요. 태권도를 그만두게 되니까 도전하기 시작한 거죠. 운동하느라 몸쓰는 일에 익숙했으니까, 춤을 같이 하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요. 그래서 (노래·춤을) 배우러 다니면서 오디션을 봤죠. 아 고교(서울체고) 시절 친구들하고 교실에다 ‘불법댄스교습소’라는 이름을 붙이고, 쉬는 시간에 춤 연습 한 적도 있어요.”
그가 기획사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없었으나, 확인차 오디션 결과를 물었다. 그는 ‘하하하’ 웃으며 “오디션에서 열번도 넘게 떨어진 기획사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니 왜 떨어졌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라고 했다.
- 계속 운이 없었나요?
“아니에요. ‘수퍼루키’라는 오디션에서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선생님을 만났어요. 연습실로 저를 부르시더니 ‘바운스’를 해보라고 하시고 나가셨어요. 선생님은 안 오시고, 시키신대로 ‘바운스’만 하고 있자니 미치겠는 거에요. 나중에 선생님이 오셔서 ‘아직도 하고 있었냐? 너는 너무 전투적으로 춤 추는 것만 보완하면 되겠다’며 애제자로 받아주셨죠. 그때 한 5시간 정도 춤을 췄대요.”
그게 2006년도의 일이었단다. 스승은 ‘전투적으로 하지 마라’고 했지만, 그는 ‘전투적으로’ 배웠다.
“나중에 한 음악프로 방송 무대에 섰어요. 3일 동안 밤새워 안무를 짜고 연습했는데, 제 무대 끝나고 무대에 나온 비 선배님을 봤어요. 저도 나름 3일간 고생했는데, 비 선배님 보니 ‘저게 진짜 춤이구나’라는 충격이... 아...”
이후 김주왕씨는 가수 ‘비’와 ‘박진영’을 분석했단다. “모델로 삼으면 아류에 그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노력하시는 모습을 배우고 싶은 거지, 그 분들의 춤과 노래를 똑같이 따라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사실 그는 지난해 전국 규모의 댄스대회에서 몇차례 1등을 차지했었다.
- 지난 6월에는 Mnet의 ‘슈퍼스타 K’에 도전해 최종 10인으로 선발됐다. 전략이 있었나요?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는 거였죠. 1차 UCC 응모때는 춤과 노래 영상 4개를 만들었고, 이후에는 손에서 ‘불이 나오는’ 퍼포먼스도 마련했죠. 심사위원 선생님(인순이, 이승철, 이효리)들도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 의욕이 컸던 만큼, 중간에 탈락했을 때 많이 아쉬웠겠네요.
“뼈가 부러지거나 잠을 거의 못자도 좋으니 끝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아쉬웠던 건 탈락 순간에 약간 체력이 남아있던 게 아쉬웠죠.”
집에 돌아간 그는 꼬박 3일을 누워있어야 했는데도, 당시에는 ‘체력이 남은 것 같아 아쉬웠다’고 했다.
‘슈퍼스타 K’에서 탈락하던 날, 방송에서 그는 3번의 큰 절을 했다. 지금까지 지켜봐준 시청자, 가르쳐준 심사위원, 응원해준 부모를 위한 절이었다고 했다.
- 촬영중에 힘든 건 없었나요?
“춤과 노래를 함께 하다보니 호흡이 일정하지 않아 노래를 잘 못했죠. ‘김주왕 안티카페’도 생겼고요.”
- 안티카페도 들어가 봤어요?
“그럼요. 욕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안티카페에 맞서기 위한 카페도 생겼어요. 이런 저런 관심을 가져주시는게 고맙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요.”
- 방송을 보니까 너무 승부에 집착하는 거 같았어요. 그것 때문에 악플도 있는 것 같고.
“운동했을 때 생긴 습관인 거 같아요. 뼈가 부러져도 이를 악물고 하던 버릇이죠. 지금은 이 악물고 하는 것도 좋지만 승부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어요.”
그는 이야기 중간중간 '뼈가 부러져도'라는 표현을 썼다. 그에게는 '생활밀착형' 언어였다. 얼마전에도 한 기획사에서 오디션에서 발목뼈를 크게 다칠때까지 춤을 추다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 요즘에는 뭐하세요?
"슈퍼스타 K 후속 이야기에 출연해요. 지금은 여고를 돌면서 공연을 하고 있죠."
- 방송 봤어요. 미국에 박진영 만나러 가서 원더걸스만 보고 왔다는 내용이었죠?
"맞아요. 박진영 선배님은 이후 한 시상식에서 뵈었어요. 제 등을 토닥여 주셨는데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스타'를 꿈꾸는 자의 배포가 아닌가 싶어, "스타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사를 위해 사진 좀 찍자고 했더니, "메이크업도 안했는데"라고 머쓱해 하면서도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도 '사진 초보'였지만, 그의 포즈 역시 '오십보 백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쓰다가 중요한 질문을 빠뜨렸음을 깨달았다. '슈퍼스타 K' 출신 그의 동료들이 여기저기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로 데뷔하는 터라, 부러워하거나 불안해해야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 같았다.
"불안하기는요. 저는 저만의 컨셉을 만들면서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래도 포기는 한 번으로 족하죠."
전화가 연결됐을 때, 그는 운동을 막 끝내고 나왔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그는 요즘 노래, 춤 말고도 악기와 외국어도 배우고 있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