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으로 가는 기차 장면은 백미예요. 기차는 달리고 눈발이 흩날리는데 기차 아래는 어두워서 설희가 뛰어내리는 게 정말 실감 나더라고요."(러스티)

"훌륭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무대 디자인이었습니다. 하얼빈역의 기차! 기차! 저는 정말 기차가 들어오는 줄 알았습니다."(하츠우먼)

안중근 하얼빈 의거 100주년인 지난 10월 26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해 2일까지 43회 공연하며 4만여명이 본 뮤지컬 《영웅》의 관객들이 블로그에 남긴 글들이다. 이것만 보면 이 작품의 주역은 안중근(류정한·정성화)이 아니라 기차 같다. 제작사 에이콤은 "연출가와의 대화나 관람 후기들을 보면 상당수 관객이 무대 메커니즘, 특히 기차 장면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영웅》의 무대미술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이중 회전무대로 주목받았던 박동우가 맡았다.

《영웅》의 하얼빈역 장면에서의 기차. 실물과 3D 영상으로 기차를 구현하는 비용만 1억원이 들었다.

기차에는 미닫이문이 있다

12m 길이의 기차 세트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무대 위에 서 있다. 무대막 뒤에 숨겨져 있다가 필요한 장면에만 보여주는 방식이다. 리프트(lift)와 레일을 이용해 상하좌우로만 움직일 뿐 전진·후진은 1㎝도 안 되는 '바보 기차'다.

2.7m 높이로 들어 올려진 기차가 눈발(영상)을 뚫고 만주벌판을 달리는 장면에서 갑자기 기차 내부가 드러날 때는 미닫이문이 활용됐다. 기차의 옆면을 미닫이문처럼 아래로 내려서 안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관람 중 잘 관찰하면 내려가 있는 뚜껑이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한 설희가 기차 아래로 뛰어내린 자리에는 두꺼운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안전하지만 처음 연습할 때는 두 배우(김선영·이상은) 모두 질겁했다고 한다.

영상과 실물 기차의 바꿔치기

어쩌면 《영웅》의 가장 큰 수확이다. 기차가 하얼빈역으로 들어와 멈추는 장면은 CG(컴퓨터그래픽) 영상의 각도와 실물 기차, 결함을 줄이려는 반복실험의 합작품이었다. 영상과 실물 사이에 색감과 형태의 이질감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무대 앞쪽 천장에 수직으로 설치돼 있는 프로젝터(앞에 거울을 달아 굴절시킨다)에서 달리는 기차 영상을 쏜다. 객석 쪽에서 비추면 배우들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는 아이디어였다. 기차가 들어오고 증기를 뿜으면 관객 눈앞에는 실물 기차가 보이고 거기서 이토가 내린다. 앞서 설명했듯이 기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가렸던 무대막을 치웠을 뿐이다.

이 바꿔치기는 암전(暗轉) 없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이뤄져 마술에 가까웠다. 박동우는 "외국에도 참고할 만한 기법이 없어 큰 고민이었다"며 "3D 영상과 실물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31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1588-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