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가끔 친척집을 방문해 보면 집집마다 약속이나 한 듯 안방 벽에 장식처럼 걸려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집 아이들이 학교에서 타온 상장을 액자에 넣어 전시물인 양 걸어 둔 것이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제일 먼저 상장의 내용과 개수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외딴 시골인 까닭에 분교장이나 면장님이 주는 상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시상 기관이나 등급 따위는 그다지 주목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잘했다고 주는 상인가 하는, 상의 성격과 상장의 수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 화젯거리였다.
상장을 타오면 액자를 따로 사거나 맞추어 집안에 걸어두는 풍습을 누가 먼저 생각해낸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상을 탄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의 지속적인 환기로 인하여 용기와 보람을 가지게 하므로 좋은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른들에게는 이보다 더 큰 자랑이 있을 수 없었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집안의 장래를 미리 짐작해 보게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이런저런 상이 그리 흔하지도 않았거니와 일 년이 지나고 난 뒤에 보면 학교나 그저 열심히 다닌 결과로 개근상장 하나 정도를 겨우 손에 쥐는 나로서는 그 빛나는(?) 우등상장이나 우수상 등의 상장 전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내 열등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요즘에 와서는 이런저런 상이 많아지기도 했을 뿐더러 촌스럽게 벽에 상장을 걸어 놓는 집들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상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 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도 학생들에게 상장을 전달할 때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학교생활에서는 교과목 상을 비롯해 특기상·모범상 등 각종 교내 대회 수상과 대외 행사에 따른 시상이 줄을 이어 마음먹고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일 년이면 20회 이상의 수상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것들은 이제 모두 파일 노트라는 편리한 공간에 저장되는데 상을 탄 사람에게는 어쩌면 일생을 두고 소중히 보관되는 보물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창안해 낸 행동의 변화를 위한 자극제 중 으뜸이 바로 칭찬과 상이 아닐까 한다. 상에 대한 대척점에 벌(罰)이란 것도 있어 이 또한 행동의 변화를 자극하므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말이 있지만 전자가 긍정적이고 상향성 자극제라면 후자는 부정적이고 하향성 자극제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상 받는 일을 두고 흔히 다다익선이라고들 한다. 많이 받을수록 빛나고 좋은 일이란 뜻이다. 이를 대변하듯 신문을 펼치면 인물 동정란에 일년 내내 이런저런 수상 소식이 끊이지 않고, 특히 연말이면 봇물을 이룬다.
그 모든 상들이 수상자 결정 과정이 공정하고 값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상 앞에서 행복해하고 더러는 지나치리만큼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상이 분명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많고 많은 상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은 단연 노벨상이다. 노벨상은 엄격한 심사로도 유명하며 해마다 10월이면 전 세계적인 이목이 스웨덴의 왕립과학아카데미로 쏠린다. 그러나 그런 상에서조차 가끔은 공정성 시비가 일어 뒷맛을 개운치 않게 할 때도 있다.
얼마 전 발표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 선정은 말들이 많았다. 미국 역사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긴 했으나 취임 1년도 안 된 현재진행형 인물에게 가당치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한편에서는 상이란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격려의 뜻도 담긴 것이라며 수상자를 옹호하기도 했다.
양쪽 모두 상의 본래 성격을 바르게 알고 하는 일리 있는 주장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물들이 상 받는 일로 세계적인 화제를 뿌릴 때면 속절없는 범인들도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먹고사는 일에 더 열중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초라하기 짝이 없어, 집안 벽에 걸어두고 자랑할 만한 상장 한 장 제대로 타보지 못했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지고 어른이 된 뒤에는 운 좋게도 내 이름자가 들어간 이런저런 상을 더러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받은 상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을 꼽으라면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에게서 받은 한 장의 상장이다. 몇 해 전 한 해를 마감하는 수업 시간에 내가 일 년 동안 국어를 가르친 반 아이들이 만들어 준 이면지를 이용한 상장인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선생님은 1년 동안 학생들에게 멋진 시를 소개해 주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즐겁게 가르쳐 주셨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날짜와 함께 직인을 대신하여 붉은 글씨로 학급을 적어 놓은 솜씨가 제법이어서 여느 상장과 다름이 없었다. 상은 그런 것이다. 비록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내가 아이들로부터 받은 소박한 상장 하나를 마음에 담고 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꽃은 바람 앞에 서 있지 않아도 멀리까지 향기를 풍기는 법이다. 이리저리 상을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 상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어느 노스승의 말이 생각나는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