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와 체중은 비슷하다. 또 같은 동양인이다. 그런데 자신있는 종목은 늘 갈린다. 한국과 중국의 역도 선수들이 그렇다.



역도에는 인상과 용상의 두 종목이 있다. 인상은 바벨을 바닥에서 머리 위로 한번에 들어올리는 것이고, 용상은 바닥에서 어깨까지 바벨을 걸치는 1차 동작 뒤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2차 동작으로 구성된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인상에, 한국은 용상에 강했다. 한국 역도 간판 장미란(고양시청)도 과거 라이벌 무솽솽(중국)과 다툴 때 늘 용상에서 앞선 반면 인상에서는 밀렸다. 또 남자 역도의 사재혁은 24일 고양 세계역도선수권대회 77kg급에서 용상에서만 중국 선수들을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역도 지도자들은 "중국을 누르려면 인상에서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중국과 한국 선수들 사이엔 일반인들이 모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프로그램 - 자세 - 타고난 신체구조 차이
사재혁은 인상 연습 중 4번 부상 … 심리적 문제도 한몫

▶프로그램이 다르다

장미란의 소속팀 고양시청의 최성용 감독은 "중국 선수들은 특유의 인상 훈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데, 그 내용이 비공개여서 완전히 파악이 안된 상태"고 말했다. 최 감독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역도 훈련 프로그램은 뿌리부터 다르다. 한국은 역도 도입 이후 옛 러시아 코치들로부터 전수받은 프로그램을 갖고 훈련했다. 러시아 프로그램은 용상 훈련에 중점을 둔다. 반면 중국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쓰는데, 이것이 인상 기록을 끌어올리는 데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최 감독은 "중국 선수들은 인상 동작 때 무게중심을 우리보다 앞에 둬서 들어올리는 스피드를 올린다. 구두 뒷굽이 우리보다 높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안다고 해도 이미 성인인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유소년 때부터 해 온 인상 훈련 방식을 갑자기 성인 선수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 결국 인상을 따라잡으려면 어린 선수들에게 중국 전지훈련 기회를 주고 직접 배우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세도, 타고난 신체도 다르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역도 전문가 문영진 박사는 "훈련 프로그램의 차이가 크다"면서도 "선천적인 신체 구조의 차이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일단 프로그램의 차이는 자세의 차이를 만든다. 한국 선수들은 인상에 나설 때 발을 '11'자 형태로 나란히 하고 서는 반면, 중국 선수들은 팔자걸음을 걸을 때처럼 발끝이 바깥을 향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문 박사에 따르면 발끝을 약간 벌리는 자세는 바벨을 몸에 딱 붙여 빨리 들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인상에 유리하다. 반면 용상에선 발 전체가 안정적으로 무게를 받칠 수 있게 발을 나란히 하는 편이 좋다. 또한 선천적인 신체 구조도 다르다는 게 문 박사의 설명이다. 문 박사는 "한국 선수들은 몸통이 앞뒤로 두꺼운 반면, 중국 선수들은 앞뒤로 얇은 대신 옆으로 많이 퍼져 있다"며 "몸의 옆쪽 근육이 많이 발달하면 몸통과 팔을 붙이기가 쉬워 한 번에 힘을 쓰기가 좋다"며 중국 선수들이 인상에 강한 이유를 설명했다. "앞뒤로 두꺼운 한국 선수들의 몸은 인상에는 불리하지만 큰 무게를 안정적으로 들어 지지하는 데는 더 좋다"고도 덧붙였다.

▶심리적인 문제

'전통'이 선수들의 심리를 좌우하는 면도 있다. 한국이 용상에 강하고 인상에 약하다는 인식이 워낙 오래 되다 보니 선수들이 일단 인상에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훈련 프로그램 특성상 대부분 용상을 더 잘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대부분의 선수가 "용상이 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또 선수의 개인적인 사정도 한몫 한다. 무릎, 손목 등에 부상이 잦아 수술을 네 번이나 한 사재혁은 인상 연습 중 대부분의 부상을 당했다. 그런 탓에 늘 인상이 두렵다. 사재혁은 "인상은 기록을 크게 늘리려고 하지 않는다"며 "사실 또 다칠까봐 겁이 나서 늘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