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30㎞쯤 떨어진, 민다나오 섬의 마긴다나오 주에서 내년에 이곳의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던 후보자 일행과 기자 등 46명이 최악의 선거 테러로 살해됐다. 필리핀 경찰청의 레오나도 에스피나 대변인은 24일 오후 "마긴다나오의 납치 지역 인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시신 46구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글로리아 아로요(Arroyo)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사가 발생한 마긴다나오 등 2개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필리핀군 당국은 무장 군인 수천명과 탱크 등을 현지에 보내 범인들과 배후 세력 색출에 나섰다.

마긴다나오 주에 있는 블루안 시의 이스마엘 망우다다투 부시장의 가족과 변호사, 지지자 및 기자 등 40여명은 23일 오전 10시30분쯤 차량으로 샤리프 아그와 지역을 지나다 무장 괴한 100여명에게 납치됐다. 이들은 내년 5월에 있을 주지사 선거의 후보 등록을 위해, 현지의 선거관리위원회로 가던 길이었다.

이후 현지 경찰과 군은 24일 오후까지 인근을 수색한 끝에, 납치 지점 근처에서 24구의 시신을 찾아낸 데 이어, 이곳에서 약 4.8㎞ 떨어진 산악 지대의 한 구덩이에서 시신 22구를 추가로 찾았다. AP통신은 "깊이 2m의 구덩이에 시신들이 포개져 있었고, 살해된 이들 중에는 이스마엘 망우다다투 부시장의 부인과 두 여동생, 3명의 여성 변호사, 임신한 여성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희생자들의 손이 뒤로 묶였으며, 온몸에 총알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남부 무슬림 반군 활동이 강한 이곳에서, 두 정적(政敵) 가문의 오래된 갈등이 빚은 것으로 AP통신은 보도했다. 즉 2001년부터 사실상 이 지역을 지배해 온 주지사 안달 암파투안의 가문에 망우다다투 가문이 주지사 후보를 내면서 '도전'하자, 암파투안측이 후보자측 일행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납치·학살 테러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망우다다투측의 지지자 4명이 테러범들의 신분을 밝혔으며, 가족과 지지자들이 대거 희생된 망우다다투 부시장은 테러의 배후로 암파투안 가문을 지목했다. 그는 "나와 가족들이 암파투안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시신을 묻은 구덩이를 미리 파 놓았다는 점에서 사전에 계획된 범행"이라고 비난했다. dpa통신은 "주지사인 암파투안은 현지의 토호 세력으로 무장한 사병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며, 수년 전 아로요 대통령의 남부지역 선거유세 때 아로요측을 도와준 적이 있는 아로요의 동맹"이라고 보도했다.

필리핀 언론연맹측은 "이번 사건으로 최소 20명의 기자들도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현장의 범인들은 물론 배후세력도 조속히 색출해 정의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프랑스 파리 소재의 '국경 없는 기자회'측은 "확인될 경우 단일 언론인 희생 사건으로 최대"라고 밝혔다.

한편 아로요 대통령은 이날 대변인을 통해 "앞으로 수사가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고 범인을 즉각적으로 색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