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택 시인(50·경희대 국문과 교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켜 섬세하게 관조하는 시집이 나왔다. 관념의 시학(詩學)을 고집스럽게 탐구한 공로로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박주택 시인(50·경희대 국문과 교수)이 신작 시집 《시간의 동공(瞳孔)》(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이 시집의 키워드는 '시간' '배경(背景)' '동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박주택 시인은 "굳이 '동공'이란 단어를 쓴 것은 사물과 그 배경(세계)의 본질을 깊게 꿰뚫는 응시의 힘을 내장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영혼을 저녁에 가둔 사람'으로 등장한다. 시인은 '낮과 밤이 뒤섞인 진눈깨비' 같은 시간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자작나무 숲'으로 표상되는 이상향(理想鄕)으로 가지 못한 채 진눈깨비 같은 시간 속에 등을 구부린 채 갇혀 있기 때문에 흐릿하게 보인다. 박주택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응시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배경이 인간을 바라보기도 한다"면서 "사물의 깊은 곳을 응시하다 보면 시간의 동공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우두커니 앉아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배경을 보라/ 나무의 배경과 겹쳐 황금빛 항아리를 만드는/ 저 결곡한 눈동자를 보라'(시 '배경들' 부분)

박주택의 시는 '깊은 곳, 깊은 눈'을 들여다보면서 '눈물 속 어리비치는 나라/ 그 속, 마음꽃'을 꺾으려는 언어의 심연 탐험이다. 내면의 깊은 지층을 탐사하는 박주택의 시는 복잡한 자의식의 층위(層位)에서 떠오르는 언어들을 병치하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만리포 혹은 더 많은 높이에서 자신의 곡조를 힘없이/ 받아들이는 발자국…' 같은 시행에서 '만리포'라는 구체적 지명이 시인의 의식을 반영한다면, 그 뒤에 붙은 '더 많은 높이'라는 모순어법은 시인의 무의식적 산물이다. 시인은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을 통해 보다 입체적인 미학을 지향하려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