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 기자 "난해함 속에서도 몰입도는 최고" 대박지수 80%

'백야행'의 원작자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가 3인방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의 작품 60여 편 중 14편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됐지만 '백야행' 만큼은 섣불리 제작자들이 손을 대지 못한 작품이다. 3권 분량의 방대한 스토리를 단 2시간 짜리 영화에 담난다는 것 자체가 업계에서도 불가능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백야행'은 드라마화 돼,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일본 마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관객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낯설 것이고, '백야행' 역시 손예진ㆍ고수가 주연한 미스터리 추리 멜로 정도로 여겨질 것이다. 특히나 개봉 전부터 손예진과 고수의 노출과 베드신에 관심이 쏠렸기 때문에 작품성 자체와 그 배경에 대해서는 지식이 모자란 관객이 많다.

기대 혹은 예상과 달리 '백야행'은 과도한 노출이 있는 섹스 영화가 아니다. '추격자'나 '세븐데이즈' 부류의 추리 스릴러도 아니다. 그러나 퍼즐을 맞추듯 꼼꼼한 시나리오와 주인공인 미호(손예진)과 요한(고수)의 캐릭터, 미묘한 사랑은 국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함을 안겨줬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135분의 긴 러닝타임 내내 한시도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주인공들의 트라우마가 마지막엔 가슴에 콕 다가와 박힐 정도였다.

영화의 시작은 온통 하얀 방에서 무표정한 누군가와 섹스를 벌이는 미호(손예진)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또 다른 어두운 어떤 방에서 요한(고수)은 누군가의 목을 졸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있다. 섹스와 살인을 오가는 장면 속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가 웅장하게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긴장과 흥분으로 뒤범벅되며 교차 편집된 도입부는 충격적이지만 영화의 주제를 가장 극명히 암시한다.

연쇄 살인범이 누구인지를 처음부터 공개하는 이유는 '이들이 왜 살인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화두를 영화가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식 '백야행'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원작보다 친절한 사건 전개와 설명은, 이번 살인사건을 치열하게 뒤쫓는 형사 동수(한석규)가 맡고 있다. 영화의 관찰자인 동수는 두 사람 사이에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자,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미호(손예진)가 언제나 한 줄기 빛이 되어줬던 요한(고수)이 죽자 마치 어둠을 외면하듯이 돌아서면서 충격과 반전을 던진다.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운 미호의 표정과 그의 얼굴 위로 내리쬐는 태양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난해함 가운데, 진한 여운은 가슴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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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경 기자 "끝내 답을 알 수 없는 미호의 사랑, 여운일까? 한계일까?" 쪽박지수 50%

시적 은유로 넘쳐나는 대사와 흑과 백이 어우러진 미장센, 여기에 태양 아래 서 있는 듯한 손예진의 찬란한 미모와 물오른 연기.... 마치 예술 작품 한편을 감상하는 듯하다. 또 고수의 파격적인 온몸 열연은 '색, 계'의 양조위를 떠올릴 만큼 위태롭고도 슬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는 여러 면에서 치밀한 계산이 바탕에 깔린 작품이다. 작품성과 흥행성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한다. 근친살인과 동물적인 섹스신이 가장 화제가 됐지만, 기저에 흐르는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가 터질듯히 팽창한 풍선처럼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잔인한 멜로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까지 남녀주인공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 바로 영화의 매력이자, 흥행적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내지르지 않고 미묘하게 사라져 버리는 일본적 감수성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나름의 해석을 곁들이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살인사건에 대한 명확한 해답과 남녀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결론을 100% 알고 싶어하는 관객이라면, 불친절한 결말에 찝찝할 수도 있겠다. 결국 취향과 선택의 문제다.

어찌됐던 '백야행'은 숱한 시적인 대사들로 인해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다. 중반부, 젊은 나이에 약혼자의 도움으로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론칭하는 미호(손예진)는 그를 부러워하는 점원에게 나지막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내 인생에 태양은 없었어. 언제나 밤뿐이었지.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있었으니까. 그 빛은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이 대사는, 14년 전 치정에 얽힌 한 잔혹한 살인 사건 속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살인 용의자의 딸 미호와 피해자의 아들 요한(고수)은 그 사건 이후,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과 함께 평행선을 걷는 듯 살아간다. 미호에게 빛이 되어주기 위해 어둠 속에 살게 된 요한. 그는 잔혹한 살인을 대신하며 미호와의 사랑을 완성시켜 나가려 한다.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하나의 소실점이 되어가며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한석규의 동물적인 연기와 중견 배우 차화연의 파격적인 변신도 영화의 볼거리. 한석규는 한치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미호와 요한 사이에서 동물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형사 동수를 연기했다. 차화연은 요한의 친모로 괴물이 되어가는 아들을 끝까지 보듬는 어미의 아픔을 파격적으로 연기했다. 차화연이 "'동물의 왕국'을 보니, 어미 원숭이가 죽은 지 한달되는 새끼를 품고 다니더라"고 말하는 부분은, 아들을 잡으려 혈안이 된 동수에게 부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 속에서 유일하게 튀는 인물은 이민정이다. 미호의 약혼자인 대부호의 비서로 출연하는 이민정은 불안정한 발성과 오락가락하는 캐릭터로 명암이 강렬히 대비되는 작품 속에서 모호한 인상으로 사라진다.

손예진의 노출신 강도는 예상보다 빈약하다. 서로가 맴도는 관계인 것처럼 손예진과 고수의 베드신은 각기 다른 배우와 치러진다. 특히 손예진의 베드신은 얼굴 표정에 거의 집중된다. 다만 일순간 지나가는 그의 나신은 어둠으로 가득한 스크린을 한꺼번에 밝히는 눈부신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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