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의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

그들은 전설이었다. 또래 사이엔 적수가 없었다. '500 대 4'의 수적 열세에 몰려도 물러서지 않았다. 얼굴도 잘났고 '깡'과 '담'으로 부산 바닥을 휘어잡았다. 여기 그들보다 조금 '덜 떨어진' 아이들이 있다. 센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소심하다. '깡' 대신 '허세', '담' 대신 '비굴함'으로 살아온 17년 세월이다. 영화 '바람'의 주인공 짱구(정우)와 광춘상고 친구들에게 학교는 약육강식의 세계. 짱구는 입학 첫날부터 군기잡는 선도부 형들한테 잔뜩 주눅이 든다. 그런 무시무시한 선도부 형들도 꼼짝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교내 불법 폭력조직 '몬스터'.

광춘상고에는 3개의 폭력클럽이 있다. 11년 역사의 '레이저'와 17년 역사의 '피닉스', 그리고 26년 역사의 '몬스터'가 바로 그들이다.

싸움 좀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짱구는 같은 반 친구들의 자산관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다 경찰서에서 2박3일 단기투숙하는 신세가 된다.

엄한 아버지와 그보다 더 살벌한 형 밑에서 죽어 살던 짱구는 본의 아니게 '몬스터'의 신입부원이 되고, 조직의 단맛과 쓴맛을 체험하며 어느덧 후배들 앞에서 위세를 떠는 2학년이 된다.

영화 '바람'이 들여다보는 광춘상고에서의 3년은 짱구에게 사춘기 소년의 방황과 상실, 그리고 성장을 의미한다. '바람'은 영화 '스페어'로 데뷔한 이성한 감독의 두번째 작품. 그는 '스페어'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 정우의 10대 시절 경험담을 듣고 그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청소년용 방송 드라마처럼 두서없이 가볍게 이야기를 던지던 영화는 돌연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언제나 큰 산처럼 버티고 있을 것 같던 아버지가 어느날 초라한 노신사로 보일 때 느끼는 아들의 묵직한 슬픔. 너무나 많은 영화와 드라마, 노래 가사 속에서 다뤄진 진부한 내용이다. 다행히 그것을 말하는 '바람'의 화법은 배우 정우의 연기를 통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힘이 생겼다.

'바람'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에서 공식 상영됐다. 폭력서클이 등장하고, 학교 담 밑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폭력이나 조폭, 깡패를 미화한 영화는 아니다. 그 주위를 맴돌며 동경하던 한 소년의 성장통일 뿐이다.

옷을 홀딱 벗거나 유혈이 낭자하지 않지만, 몇몇 장면의 '모방 위험성' 때문에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굳이 이 결정의 가장 큰 피해자를 찾자면 자기 자신과 그 주변 이야기를 애정있게 다뤄준, 몇 안되는 웰메이드 장편 영화 한 편을 만날 기회를 잃은 현재의 고등학생일 것이다. 영화는 26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