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골키퍼의 죽음이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으로 들떠 있던 독일 전역을 깊은 슬픔에 빠뜨렸다.
독일 분데스리가 하노버 96의 주장 로베르트 엔케는 지난 11일(한국시각) 하노버 인근 노이슈타트의 철길에서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도의 물결 속에서 12일 테오 츠반치거 독일축구협회 회장은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독일과 칠레의 친선경기를 취소하기로 했다. 이 방법 외에는 고인에 대한 존경을 표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행을 이미 확정한 독일은 칠레와 코트디부아르(18일)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있었다.
3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엔케는 현 독일 대표팀의 '넘버원' 골키퍼였다. 노장 옌스 레만(40)이 유로 2008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며 엔케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의 골문을 지킬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혔다. 30살이던 2007년 3월 덴마크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엔케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8경기에 출전했다. 엔케가 골문을 지킨 경기에서 독일은 5승2무1패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최근 세균 감염으로 9주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엔케는 복귀 후 두 번째 경기였던 지난 8일 함부르크 전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인 위기를 막아내며 2대2 무승부를 이끌었지만, 그 경기가 생애 마지막 경기가 됐다. 엔케의 사망 후 수백명의 팬은 추모의 촛불로 하노버 홈구장 주위를 밝혔다.
엔케의 자살 원인은 2003년부터 시달린 우울증으로 알려졌다. 특히 2006년 두 살 된 딸 라라를 심장병으로 잃고 난 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왔다. 엔케가 죽은 지점도 딸의 무덤과 그리 멀지 않았다. 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은 "우리는 모두 최고의 선수이자 좋은 친구였던 엔케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