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한나라당 주류와 비주류 진영의 갈등이 9일부터는 냉전(冷戰)에서 열전(熱戰)으로 치달았다. 친(親)박근혜 진영은 이날 세종시 수정을 논의하기 위해 당내에 설치된 '여론수렴 특위'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야당(野黨) 이상으로 정운찬 국무총리를 공격했다. 주류측 역시 가능하면 싸움을 피해보자는 그동안의 입장이 바뀐 듯 이날부터는 적극 공세로 전환했다.
한나라당은 세종시 문제를 당 차원에서 논의하기 위해 정몽준 대표 직속으로 '세종시 여론수렴 특위'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9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친박계도 특위에 참여하는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제가 얘기할 사항이 아니고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전날 정몽준 대표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나와 의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이날 친박 진영의 입장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명확한 우리 입장"이라며 "특위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대다수 의원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친박 진영이 세종시 계획 수정 논의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친이(親李) 주류 진영도 이날부터 공격에 나섰다. 친이계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과거 일들은 솔직히 모두 표 때문이었다"며 "올바른 국가 지도자라면 표 때문에 벌어진 잘못을 시인하고, 유권자가 아니라 역사 앞에서 국민과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2005년 박근혜 대표 당시 세종시법을 통과시킨 일을 겨냥한 것이었다. 세종시법 통과 당시 박 전 대표 지도부에서 대변인을 했던 전여옥 당 전략기획위원장도 "2005년 당시 (충청표가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세종시에 일단 합의하고 정권을 잡으면 되돌리자'는 선택을 했었다"며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는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답이 분명하다"고 가세했다.
한나라당 내 주류 진영이나 비주류 진영 모두 지난주까지는 "당내 분란으로 비치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해보자"는 의원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여론수렴특위 구성이 눈앞에 닥치자 더 이상 피해갈 방법이 없어지면서 충돌 양상을 보이게 됐다.
우선 친박 진영으로서는 이 기구에 참여하는 자체가 곤혹스럽다는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내 논의 참여에도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최근 몇몇 의원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수정에 반대해 놓고 수정안을 만드는 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미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박 전 대표로서는 '원안 수정'을 전제로 만들어진 논의기구에 참여하는 자체만으로도 원칙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은 이런 입장 정리 때문인지 세종시 수정을 주도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에 대해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마치 야당 의원들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한선교 의원은 "세종시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박 전 대표의 이미지를 '무조건적 반대론자'나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했다. 이정현 의원은 정 총리에게 "이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 얼굴에 칼 맞고 희생한 사람이 누구인데, 누가 어디서 잘 먹고 잘살고 편하게 지내다가 정권 만들어놓으니까 나와서 이러느냐"고 말했다.
주류측 의원들도 이날 "논의기구에 참여하지도 못하겠다는 태도는 너무한 것 아니냐"며 불쾌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명박 대선캠프 출신인 김용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박 전 대표의 '원안+α' 방침을 "정치적 사익(私益) 추구"라며 "(박 전 대표가) 국민에 대한 약속과 신뢰를 말하지만, 이는 솔직하지 못하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선거 때 충청표를 잡으려고 세종시에 찬성했었고, 지금도 유력 대권 후보로서 차기 대권을 의식해 지역주의에 기대고 있다"고 했다.
입력 2009.11.10. 00:39업데이트 2009.11.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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