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박용오(72) 전 두산그룹 회장(현 성지그룹 회장)의 사망 동기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중이다.
재계에서는 박 전 회장은 가족 문제와 기업 경영 등 안팎의 어려움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이른바 '형제의 난' 이후 두산그룹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2월 중견건설사인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꾀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건설경기가 침체돼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용오 전 회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차남이다. 박 전 회장은 1996년 12월부터 8년 8개월 동안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7월 고 박승직 창업주 3세 형제들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두산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오너 가족들 회의에서 3남인 박용성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이양하기로 결정되자 박 전 회장은 크게 반발했다.
박용오 전 회장은 동생인 박용성 회장(3남)과 박용만 당시 부회장(5남)이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과 짜고 자신을 그룹에서 밀어내려 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계열에서 분리해 자신이 독자 운영하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두산 오너 형제들은 "이는 초대회장인 고(故) 박두병 회장이 남긴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박 전 회장은 급기야 검찰과 언론에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등 경영 비리를 소상히 밝힌 투서를 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1700억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는 자신을 포함한 오너 가족과 그룹에 치명타를 가한 행동이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 박용성 전 회장, 박용만 부회장과 공모해 수년간 297억3000여만원의 비자금과 29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뒤 생활비와 대출금 이자, 세금 대납 등 개인용도로 쓴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를 은폐하기 위해 2838억6000만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을 선고받았다.
박용곤 명예회장 등 두산가 오너들은 "형제간에 분란을 일으킨 데 대해 박용오 회장을 가문에서 퇴출시킨다"고 결정했다. 박 전 회장의 폭로로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입은 박용성 회장도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경영에서 한동안 손을 떼야 했다.
박용오 전 회장은 이후 형제들과 거의 왕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주)두산 회장은 비자금 조성 및 회계부정 혐의와 관련해 정부의 사면을 받았으나 박용오 전 회장이 사면대상에서 제외됐다.
새로 인수한 건설사도 경기침체로 인해 경영난이 심화돼 어려움을 겪었다. 차남 박중원(41)씨가 기업 인수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것도 박용오 전 회장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안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