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건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그 역사 속 어떤 사건이 비극적이었다면, 또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현재 진행형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유럽을 제 손 안에 넣고자 했던 한 정치가의 광기로 수백만의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슬로건 아래, 발가벗고 가스실로 향했던 것이 이제 반 세기 갓 넘은 일이다.

최근에는 히틀러의 유골 DNA 검사 결과 여자로 판명됐다는 소식으로 역사학계 및 언론계, 혹은 음모론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본래 악한 존재라는 명제를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곤 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나치의 유대인을 향한 ‘홀로코스트’. 그래서인지 이 역사적인 대학살극은 영화화하기에  더 좋은 소재가 없을 정도의 극적인 면이 있다.

그렇지만 작가의 상상에 의한 표현일 뿐, 그 어떤 의도도 없음을 아무리 천명한다손 치더라도 이제 반세기가 갓 지났을 뿐인 이 희대의 대학살 사건을 영화의 소재로 삼을 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중압감을 피하기 어렵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존해 있고, 그로 인한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 역시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들은 대체로 비장미와 애수,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로 묵직한 여운을 남기곤 한다. 코미디 영화라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조차도 관객들은 그 비극의 무게에 짓눌려 가슴 아파해야 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그러한 중압감 따위는 처음부터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나 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이 한 많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그저 늘 그러했듯이 영화를 가지고 재미있게 ‘논다’.

유대인 색출에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는 독일군의 ‘유대인 사냥꾼’ 한나(크리스토프 왈츠) 대령과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의 수뇌부를 쓸어버릴 대작전을 준비중인 연합군의 게릴라 군단 ‘바스터즈’.

‘킬 빌’처럼 사무친 원한의 기원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참으로 그 관계가 명확하기 짝이 없는 두 집단 간의 싸움은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일면이지만, 전쟁의 양상이라기 보다는 흥미진진한 ‘스파이 게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에서 나타날 만한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의 잔가지들을 과감히 쳐버리고 영화는 적군과 아군이라는 가장 최소화된 구도로 단순무식하게 러닝타임을 채운다.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은 아마 전쟁영화 사상 가장 단순한 인간형일 것이다. 그들 머리 속에는 학살 아니면 복수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단순무식함을 전쟁영화에서 발휘하는 건 제법 두둑한 배짱을 요구한다. 무릇 전쟁이라 함은 인간이 가진 감정의 모든 형태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치열한 무대다. 수백 수천만 사람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오욕의 ‘홀로코스트’ 역사를 가지고, 이렇게 시침 뚝 떼고 2시간 반 짜리 양질의 오락거리로 만들어버리는 건 보통의 ‘깡다구’가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치욕의 ‘홀로코스트’를 우스꽝스러운 오락물로 전락시켜버린 영화에 대해 정색하고 비난을 쏟아낼 수 없다. 왜냐하면 영화의 감독은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이기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세계관은 그의 다양한 필모그래피 내내 일관되면서도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인물들을 최악의 상황 속에 집어 넣고 차마 눈 뜨고 못 볼 폭력성으로 영화를 수놓지만 그 모든 건 농담처럼 보인다. ‘바스터즈’는 연기자들의 냉소적인 연기, 의외의 인과관계, 시시껄렁한 유머, 거침없는 피의 향연으로 점철된 블록버스터급 ‘엉뚱 액션활극’쯤 될까.

쿠엔틴 타란티노는 ‘Just Kidding(그냥 장난이야)’이라며, 영화 안에서 유쾌하게 놀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정색을 하고 따지는 건 그의 영화보다 더 단순무식한 센스다. 무엇보다 영화는 2시간 반 가량의 제법 긴 러닝타임 동안 내내 재미나지 않은가.

우유 한 잔으로 상대를 공포에 벌벌 떨게 만드는 한스 대령의 함박 웃음, 머리 가죽을 좋아한다는 알도 중위(브래드 피트)의 능글맞은 미소, 나치들에게 종말을 선언하는 쇼산나(멜라니 로랑)의 기괴한 포효 등이 기막히게 영화 안에서 조화롭다.

쿠엔틴 타란티노 정도라면 영화를 가지고 조금 과하다 싶은 농담을 해도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그만의 영화 영역이 있다. 그러한 영역을 구축한 건 그의 남다른 영화적재능 때문일 테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부담 없이 양껏 즐기는 것은 아마 그가 지금껏 구축한 세계관에 대해 예를 표하는 소박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10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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