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식가들에게 '유기농'은 더 이상 매력적인 단어가 아니다. 이젠 산·들·바다에서 직접 캐 먹는 '채집 음식(採集·foraging food)'이 대세다. 길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은행, 산에서 발견한 도토리와 밤, 풀밭에서 누구나 따서 먹을 수 있는 민들레, 강에서 쉽게 잡히는 민물고기 등 모든 것이 최근 신선한 식재료로 각광받고 있다.
◆유기농 굿바이~ 이젠 채집 음식 시대
쑥과 산마들, 도토리, 우엉을 비롯해 참게와 새조개, 홍합 등은 우리가 즐겨 사용해온 식재료지만 '따고, 캐 먹는다'는 개념이 발달하지 않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이러한 음식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뉴욕 요리전문학교(CIA) 출신인 음식 칼럼니스트 최지영씨는 "유전자 변형 음식이 판을 치는 동안 유기농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인간의 손이 아닌 자연의 품에서 자란 식재료를 섭취하는 게 최신식 경향이 됐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음식 칼럼니스트인 케리 콘난은 블로그에서 "최상의 상태에서 채집된 신선한 음식은 인간의 미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야생 식재료의 묘미"라고 설명했다.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인 마사 스튜어트는 최근 그녀의 사이트를 통해 "에웰 기븐스가 1962년 쓴 '야생 아스파라거스 스토킹하기'가 등장한 이후 40여년 만에 채집 음식 트렌드가 주목받게 됐다"며 "어떤 유기농법도 야생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들의 식감을 흉내 내긴 어렵지 않은가"라고 평했다.
◆경기 불황이 가져온 신(新)트렌드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채집 음식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일간지 타임스 역시 '공짜로 먹을 수 있는 10가지 채집 음식'이라는 기사에서 "경기 불황에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식재료비를 아끼려 한다"며 "원시 시대로 돌아간 듯, 산이나 바다에서 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재료들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BBC도 최근 "채집 트렌드는 농약과 제초제의 사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장과 보관, 운반과 배송 등에 드는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기농 전문 사이트인 '마더어스뉴스'는 "콩, 치커리, 명아주, 질경이, 야생 아스파라거스, 광부 양상추(miner's lettuce), 다닥냉이(lepidium) 등이 최신 유행 식재료"라며 "미국이나 유럽에서 잘 먹지 않던 우엉 등도 최근 건강과 식감을 함께 높여줄 수 있는 야생 식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집 앞을 야생 텃밭으로
야생 식재료를 섭취하는 데도 '윤리'는 필요하다. 자원 보호 때문이다. '마더어스뉴스'는 "채집할 때도 뿌리는 최대한 건드리지 말고 잎사귀만 따야 하고, 반을 따면 반은 남겨둬야 하며, 너무 어린 생물들은 잡아도 놓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아무거나 먹지 말고 독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레스토랑에서 아예 텃밭을 가꾸는 게 인기를 끌기도 한다. 미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단골인 뉴욕 '블루힐'이나 미 동부 메인주에 있는 '프리모', 오바마 대통령의 식문화 컨설턴트인 엘리스 워터가 캘리포니아에 지은 '쉐 파니즈', 나파 밸리의 '우분투' 레스토랑이 대표적인 예다. 인위적인 재배가 아니라 잡초가 자라는 풀숲에서 키우는 게 특징이다. 최씨는 "최근 미국 레스토랑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식재료와 주방 사이의 거리(푸드 마일리지)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