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주립대(UC Irvine)를 졸업한 최영석(남·26)씨는 2002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온 뒤 지금까지 자기 이름의 첫 음절인 영(Young)으로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러나 최근 최씨는 취업을 앞두고 정식 영어 이름이 필요했다.
최씨는 주위 지인들에게 물어보는 등 아브라함(Abraham) 등의 이름을 물망에 올렸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 결국 피트(Pete)로 결정했다. 최씨는 “성경책에 나오는 피터(Peter)의 줄임말로, 유학 온지 7년 만에 새로 만든 이름”이라고 했다.
‘영어 이름 짓기’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 아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지었던 이름을 다시 짓는 한인들도 있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의 작명업체에 전화를 걸어 “이름 좀 지어달라”고 부탁도 한다.
미국 뉴욕주 퍼시픽 대학 중의대학원(Pacific College of Oriental Medicine)에서 한의학과 중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윤위씨는 현재 뉴욕에서 한인들 상대로 작명을 해주고 있다. 5년 전쯤 웹사이트를 열고 자신이 평소 연구한 성명학과 함께 한글 이름뿐만 아닌 영어 이름도 지어준다. 한인들 사이에서 입 소문을 타 고정 단골도 생겼다.
나씨는 “한 달에 10명 정도 이름 관련 문의가 오는데 60~70%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고 나머지 30% 정도가 현지 한인들”이라며 “전체 문의 건수 중에 30~40%가 영어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영어 이름을 2~3개 만든 뒤, 한국에 있는 의뢰인들에게 보낸다. 돈은 한국 돈으로 영어이름만 13만원, 한글·한자까지 18만원을 받는다.
나씨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그 역시 성명학을 토대로 사주와 음양오행을 따진 뒤 영어 이름을 짓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씨는 미국 이름 학회(American name Society) 회원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이 이름 학회 세미나에 참석해 최신 영어 이름 트렌드를 연구한다.
이후엔 같은 학회회원으로 남아프리카 출신 유명저술가 로이 파인슨(Roy Feinson)의 저서 ‘이름이 가진 비밀의 세계’(The secret universe of names·Penguin USA)를 참조한다. 450쪽에 달하는 이 책은 국내 유명 작명가들도 참조할 만큼 ‘미국 이름의 이면’에 대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카리스마·성공·애정과 우정·권력과 명예 지수 등 4개의 카테고리를 10점 만점으로 보고 이름을 평가한다.
지난 13일쯤 한국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온 이모(39·회사원)씨의 새 딸아이 이름도 이 책을 바탕으로 지었다. 이씨는 “결혼 2년 만에 늦둥이를 가졌다”며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름을 현지인의 감각으로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씨는 우선 음양오행 기준으로 알파벳 F,J, M, P, S가 이름의 첫 음절로 가능하다고 본 뒤, 흑인들이 쓰는 타미카(Tamika) 욜란다(Yolanda) 등 이름을 배제했다.
나씨는 “고심 끝에 프랑스어로 ‘자유’란 뜻의 프란신(Fracine)와 ‘주인’이란 뜻의 조이스(Joyce) 등 이름 5개를 한국에 보냈다”며 “프란신은 카리스마 지수 등 4개 부분에서 전부 10점이었고, 조이스는 평균 8.5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서 인기가 많고, 더 세련된 이름을 접할 수 있다”며 “동양학과 미국 현지 전문가들이 본 영어 이름의 기준을 적절히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나씨는 “한인들 같은 경우 영어에 친숙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이름을 가지고 와 상의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라며 “이외 종교를 가진 한인들이 아이를 낳기 몇 달 전부터 미리 종교적인 이름을 지으려 하거나, 과거 이민을 오면서 대충 지었던 영어이름을 바꾸는 경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