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라크라센터 산 기슭에도 소리를 듣는 순간 으스스 떨리는 ‘귀신(鬼神)’ 이야기가 생각날 정도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밤이 깊어가고 있다.

SK 와이번스-KIA 타이거즈의 200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은 이곳 LA 시각 23일 밤 10시에 시작돼 자정을 훨씬 넘겼다. 우리 동포 야구팬들은 가을 밤을 지새다시피 하면서 7차전 9회 말 끝내기 홈런 명승부를 감상했다.

‘야구의 신(神)’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던 SK 김성근 감독은 역전 패배 후 인상적인 소감을 밝혔다. 김성근 감독은 2009시즌 SK 야구가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만약 SK가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후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후, KIA와의 광주 경기에서 2연패로 시작해 7차전까지 이끌고 간 승부를 한국시리즈 3연패의 달성의 위업으로 마무리했다면 어떤 얘기가 나왔을까?

분명 ‘역시 야구의 신(神)’이라는 극찬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도 ‘신(神)’의 반열에 오른 야구 인은 없다. 일본 야구에는 2007년 세상을 떠난 한국계로 알려진 철완 이나오 가즈히사가 하느님, 부처님 다음의 ‘이나오 님’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김성근 감독에 대한 평가와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그가 KIA와의 한국 시리즈 7차전 명승부를 연출하며 프로야구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극대화하는데 대단한 공헌을 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아울러 김성근 감독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사람’으로 돌아왔다. 내년 시즌 김성근 감독이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야구’를 새롭게 선보이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이 기회를 통해 과거에 소개한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의 귀신 이야기에 금년 최신 뉴스를 더해 ‘야구의 신(神)’은 없어도 야구계에 ‘귀신(鬼神)’은 있다는 주장을 해보겠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올 시즌 성급하게 귀신 출몰 설이 나왔다. 오랜 전통과 맥주의 도시로 유명한 밀워키에서였다. 밀워키는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50분 안팎의 거리에 있다. 특파원으로 메이저리그 출장 초창기에 밀워키를 제대로 몰라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시카고에서 차를 렌트해 이동하면 편한데 무작정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소형 프로펠러기가 바람에 흔들려 멀미RK 날 정도로 고생을 했다. 날씨가 나쁘면 아예 이륙하지 않아 경기 시작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초조하게 만들었다.

하나 더 있다. 메이저리그 팀이 있는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인근 어디에도 한국 식당이 없다. 시카고 쪽으로 멀리 나가야 한다. 박찬호 등 한국인 빅리거들이 원정 경기를 갔을 때 음식 문제로 가장 고생하는 도시가 밀워키이다. 맥주를 즐기는 팬들은 밤 10시가 넘으면 술집을 제외한 시내 상점에서 맥주를 팔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가야 한다. 맥주의 도시에서 맥주 사기가 힘든 것이다.

지난 5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밀워키에 원정 갔을 때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다운타운의 상징적인 파이스터 호텔에서 또 다시 유령이 출몰했다고 지역 TV인 WISN이 보도했다.

이미 홈팀 밀워키 선수들은 원정 팀 선수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무리인 트레버 호프만은 “어떤 층에서는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그 곳에 들어서면 몸이 절로 오싹해진다.”는 얘기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귀신을 경험한 세인트루이스의 한 선수는 자신의 방에서 한줄기 빛이 움직였고 그 순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주장했다. 이 호텔 투숙객들을 취재한 바에 의하면 그랜드 볼룸 위의 발코니에서 호텔의 설립자인 찰스 파이스터의 유령이 로비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목격됐다고 한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토니 라루사 감독은 유령 등장 설에 대해 “특급호텔은 최고의 대우를 받는 곳이다. 귀신들이 한두 명 있다면 그들도 우리들의 친구들이 분명하다”라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기간 한국 프로야구를 취재하면서 들은 가장 놀라운 귀신 이야기는 사내아이인 ‘동자(童子) 귀신’에 관한 것이었다. 전 롯데 강병철 감독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귀신을 경험한 선수는 롯데의 유망 투수였다. 롯데 투수 한 명이 허리가 아파 시름시름 앓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레이너가 물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아 여러 병원을 찾아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한결 같이 아무 이상이 없다는 판정만 나왔다. 허리는 계속 아프고 선수는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부산 해운대 근처에서 그 선수가 우연히 친척을 만났다고 한다. 그 친척은 신(神)이 내렸다는 무속인(巫俗人)이었다. 그런데 그 친척이 허리가 아파 고민하는 선수를 만나자 마자 고함부터 질렀다. “너 이놈, 왜 남의 허리에 올라 타 앉아 있느냐!”

느닷없는 호통 소리에 놀란 그 선수는 영문도 모른 채 “무슨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척은 “동자 귀신이 네 허리에 달라붙어 있어서 야단쳐 쫓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선수가 동자 귀신을 업고 있어 허리가 아팠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그 후 허리 통증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시즌의 절반을 원정 지에서 보낸다. 당연히 숙소인 호텔에서의 귀신 이야기가 존재한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대전의 모 호텔에 귀신 출몰 소동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인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원정팀 호텔인 ‘르네상스 비노이 리조트(Renaissance Vinoy Resort)’가 귀신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베이브 루스가 현역 시절 이용했을 정도로 전통 있는 호텔인데 2003년 보스턴 투수 스캇 윌리엄슨이 새벽에 복도에서 유령을 봤다고 떠들어 갑자기 귀신 출몰지가 됐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KIA의 주포 최희섭이 2004년 플로리다에 몸담고 있었던 시절에도 동료인 루이스 카스티요가 유령 비슷한 것을 봐 밤새 한 잠도 못 잤다고 해서 일부 선수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2006시즌께 LA 다저스도 탬파베이와 원정 경기를 펼쳤을 때 호텔에서 또 귀신이 나왔다고 해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다저스의 원정 담당 직원인 스콧 아카사키는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된다. 오래된 전설에 불과할 뿐”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선수인 채드 빌링슬리와 조나단 브록스톤은 자신들의 방에서 기이(奇異)한 경험을 했다고 다음 날 토르피카나 필드에서 동료들에게 떠들었다.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채드 빌링슬리는 “바보 같은 얘기지만 동료의 방에 있는데 옆의 내 방 화장실에서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계속해 들렸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그 동안 빌리 코치, 스콧 윌리엄슨, 제이 기본스, 브라이언 로버츠 등이 귀신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앞서 4년 전에는 피츠버그 선수들 몇 명이 귀신에 놀라 아예 호텔을 떠나 인근에 있는 동료의 친척 집으로 대피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웨스틴 세인트 프랜스시 호텔도 귀신이 출몰하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복도에 배우를 닮은 귀신이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한편 올해도 유령 출몰 설에 휩싸인 밀워키의 파이스터 호텔은 과거 애드리안 벨트레가 LA 다저스에서 뛰던 시절 귀신과 한판 몸싸움을 한 뒤 배트를 옆에 두고 잠을 잤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 후 LA 다저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숙소를 변경했다.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MLB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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