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부정과 일탈을 노래해왔다. 사회현실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세상을 노래하는 정태춘(55)이다.
2004년 4월 공연과 시집 ‘노독일처’ 출간을 제외하면 5년여간 대중과 소통을 단절했다.
지난 시간 자신에게 공식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동안 인간의 역사에 관한 자부심, 문명에 대한 자부심을 고민했다”며 스스로를 문명권에서 빠져나온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정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이 축적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적인 평가나 결론에 도달하게 됐고 특히 최근 들어 진행되고 있는 후기 산업사회의 모습들, 문명들, 끝도 없이 질주하는 문명의 흐름에 동승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뛰어내리겠다고 선언했어요. 내가 혐오하거나 가장 걱정하는 것은 대중의 변화가 아니고 문명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래에는 세상에 향한 뜨거움과 치열함이 녹아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정태춘이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에게 계몽적으로 접근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다.
“우리는 격동적인 시대와 시대모순이 폭발하는 시기를 체험했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역사 속에 수렴됐는지를 두 눈으로 봐왔지요. 대단히 소중한 체험이었어요. 그런 요동치는 상황이 정리되면서 그 중에서 진보의 넓은 스펙트럼보다 조금이라도 과격하면 쓰레기 취급당하는 이런 상황들…. 나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대중과 연대감 등이 사라지면서 공허감, 그런 것들이 이런저런 성찰을 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정태춘에게는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자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와 세상하고와의 관계도 다시 정리하게 됐어요.”
대중과 단절한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과 소통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면서도 자기 상상력을 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중의 취향이나 관심사에 맞춰야 되는 작품 활동은 하고 싶지 않아요. 대중에 대한 실망은 아닙니다.”
정태춘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음악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과 서정에 바탕하고 있다. 숱한 상처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출해 냈다. “저는 애초에 대중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반골적이고 아웃사이더 성향이었지요. 원칙주의자이면서 이상주의적인 취향인데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시대의 운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 부인 박은옥(52)과 함께 27일부터 11월1일까지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데뷔 30주년 기념공연을 연다. 2004년 4월 이후 5년6개월만이다. “그냥 감사 인사드리러 나왔어요. 주위에서 데뷔 30주년이 됐는데 인사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자리를 마련해서 나오게 됐습니다.”
박은옥은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의 식당에서 정태춘씨를 아끼는 분들 100여명이 모여 깜짝파티를 열어줬다”며 “그때 온 분들이 이번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태춘, 박은옥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정태춘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요. 정태춘씨가 이번 공연을 통해 잠깐이라도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공연 제목은 ‘다시, 첫 차를 기다리며’다. 2002년 10집 음반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빈산’, ‘북한강에서’, ‘회상’, ‘촛불’, ‘떠나가는 배’, ‘우리들의 죽음’, ‘정동진1’, ‘정동진3’, ‘시인의 마을’,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등 18곡을 들려준다. 정태춘이 직접 선정한 노래들이다. “팬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우선적으로 골랐어요.”
공연은 변함없이 사랑으로 노래를 지켜준 팬들에 바치는 헌정 무대다. 노래 대신 써온 그간의 정태춘 시와 사진 등으로 꾸며진다.
정태춘은 “작가정신으로 노래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창작을 통해 오래도록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풍토는 아니라고 봐요. 내가 세상 사람들과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고, 어떤 독특한 상상력까지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대중음악계를 떠나야 됩니다.”
앞으로의 삶은? “존재감이 가볍고 사유가 자유로운 삶?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