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人)의 갈등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됐다. 1~2세기 로마 제국에 패망해 전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19세기 말 시오니즘(Zionism·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이 대거 이주해오면서 토착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충돌을 빚었다. 약 2000년간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당시 오스만 튀르크의 땅이었다.'나라'라는 실체는 없었다.

1차대전으로 이곳을 차지한 영국은 1917년 유대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운다고 선언했다. 발푸어선언이다. 1947년 유엔은 이스라엘이 전체 면적의 56%, 팔레스타인이 44%를 차지하도록 했다. 이스라엘은 이 결정을 받아들여 1948년 5월 14일 건국을 선포했다. 팔레스타인은 결정을 거부했다.당시 유대인 인구는 60여 만명. 팔레스타인 인구는 약 200만명이었다.

건국 다음 날 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 인근 아랍국들은 전쟁을 개시했다. 아랍측은 1973년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 전패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가자와 서안), 골란고원(시리아), 시나이반도(이집트) 등을 추가로 점령했다. 국가를 못 세운 수백만 팔레스타인인은 난민으로 전락했고,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조직해 정치·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미국의 중재와 이·팔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1993년 오슬로협정이 체결됐다. 이듬해 서안과 가자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됐다. PLO를 계승한 파타(Fatah)는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을 잃어갔다. 그러자 강경 이슬람 원리와 적극적인 대민(對民)활동을 앞세운 하마스(Hamas)가 부상해 2006년 2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집권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괴'를 주장하는 정파다.

온건 파타와 강경 하마스의 정쟁은 이듬해 내전으로 번졌고 팔레스타인은 파타가 장악한 요르단강 서안과 하마스의 가자로 양분됐다. 이스라엘은 파타와는 협력하는 반면 하마스에는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