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매파와 비둘기파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계에서 정파(政派)를 초월해 존경을 받고 있는 드문 정치인이다. 국제사회의 이스라엘 비판에 대해 단호한 표정으로 반박논리를 펼 때보다, 과학과 문화를 얘기할 때 그의 얼굴은 한결 빛나고 풍부해 보였다.

유대인의 일주일이 시작되는 일요일(11일) 오전 예루살렘 대통령 관저에서 시몬 페레스(86)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매파와 비둘기파가 대립하는 이스라엘 정계에서 대표적인 온건파로 분류된다. 외무부 장관 시절인 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공존을 위한 오슬로협정을 이끌어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평생을 정치에 몸담았지만 20권 가까운 저서를 낸 지식인이자 틈날 때마다 시를 짓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5년 전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보면서 세계는 이스라엘과 중동에 마침내 평화가 깃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하늘엔 로켓포가 날고,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모든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진전시킨 것도 있다. 오슬로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PLO 양측은 비로소 서로를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했다. 가장 중요한 이슈인 국경문제에서 합의를 이뤘다. 아직 가자(Gaza)문제가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팔레스타인과 일정 수준의 평화에 도달했고, 이집트·요르단과도 평화를 이뤘다. 아일랜드도 갈등을 푸는 데 수백년 걸렸고, 유럽은 수천년 만에 통합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지난 겨울 가자지구 공습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많다.

"우리가 하마스의 공격을 받았는데 국제사회의 어느 전략가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공격하고 비난을 받았다. 웨스트뱅크(요르단 서안)로부터는 자살폭탄과 차량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우린 웨스트뱅크를 벽과 울타리로 둘러 쌓았고 또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공격을 하고 벽을 세우자 공습이 끝나고 폭탄 테러도 끊겼다. 자, 그럼 어떻게 판단을 내릴 것인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일부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이야기에는 역사가 있고 미래가 있다."

―그래도 국제사회 일부가 이스라엘에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좋은 이미지를 갖고 죽기보다 나쁜 이미지를 갖더라도 사는 게 낫지 않겠나. 어떤 이들은 우리가 이긴다는 사실만으로 이미지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체를 봐야 한다. 난 우리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과학, 문화, 민주주의, 평화의 갈구 등 영역에서 우리 이미지는 아주 좋다. 이스라엘은 친구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도, 중국과의 관계도 괜찮다. 심지어 러시아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있다. 우릴 큰 목소리로 비판하는 나라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릴 도울 수 없다. 여기 와서 우리 집을 지켜줄 건가? 그것도 아니면 무슨 제안을 갖고 있나? 나는 이스라엘이 자랑스럽다. 61년간 우린 9번의 전쟁을 치렀지만 단 한번도 우리의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런데 새 대통령 오바마는 아랍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만약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리에 평화를 이룬다면 우린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선 이란이 핵무기 개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란이 북한의 기술적 도움을 받아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진실이다. 이 모든 것을 평화롭게 이룰 수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

―국제사회에선 대통령을 온건파, 네타냐후 총리를 강경파로 보는데 같이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가.

"나의 멘토였던 벤 구리온(초대 총리)은 항상 내게 '사람을 소문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의 업적으로 판단하라'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웨스트뱅크의 경제 성장에 주력했고 성과를 이뤘다. 그는 자기 소속 당인 리쿠드당의 이념을 탈피해 '2국가 해법'을 받아들였고,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가 문제 삼는 정착촌들도 현 상태에서 동결시키는 데에 동의했다. 나는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고 그의 업적에 경탄할 뿐이다. 우리는 함께 일을 잘 한다."

인터뷰 중인 페레스 대통령(왼쪽)과 김형기 부국장.

―이스라엘엔 16개의 정당이 있고 늘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한다. 어떻게 합의를 이뤄나가나.

"유대국가는 이스라엘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우리의 존재 자체는 어떤 법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중대하게 결정할 사항이 있을 경우 정당들은 항상 다수 의견을 도출해냈다. 다른 측면도 있다. 정당이 16개나 있으면 정부는 약해진다. 정부가 약하면 시민사회가 강해진다. 이스라엘의 시민사회는 엄청나게 강력하다. 하이테크업계는 정부가 필요없다고까지 말한다. 색다른 힘의 분배가 이뤄지는 것이다. 군대, 화폐, 통신 주파수처럼 시민사회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만 국가가 통제하고 다른 것들은 다 자유다. 이런 것들이 이스라엘을 무척 드라마틱한 나라로 만든다. 사실 나도 정당이 2개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미 있는 16개를 잘 활용하는 수밖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력과 벤처 열기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유대인은 절대 '만족'을 모른다. 유대인은 불만족하기 위해 태어난 민족이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벽함을 계속해서 세상에 들여와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불만족의 결과 창의력이 방대하다. 아인슈타인에서 프로이트까지 역사 속의 위대한 두뇌들이 유대인의 것이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유대인 어머니는 '너는 오늘 학교에서 좋은 질문을 많이 했니?'라고 물어본다. 무조건 매번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벤처사업이 꽃피는 이유 중 하나라 하겠다."

―할아버지로부터 탈무드를 배웠다고 들었다.

"탈무드는 절대 단순한 문답을 하지 않는다. 하나의 질문은 10개의 추가 질문으로 이어진다. 판단을 내릴 때 사물을 더 깊이 보고 더 정교하게 생각하는 나의 방식은 성경과 탈무드로부터 나왔다. 나는 전 생애를 통틀어 항상 탈무드의 가르침을 깨닫는다."

―노벨상도 받고 총리, 대통령 다 해봤는데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는가.

"최근에 도달한 깨달음은 이것이다. 꿈보다 더 꿈 같은 것은 바로 과학이다. 과학이 이뤄낸 업적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들을 초과 달성했다. 그래도 우린 아직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아직도 발견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우주, 바다의 깊이 심지어 우리의 뇌까지 우린 모르는 게 아직 너무 많다. 나의 꿈은 우리가 최단 시간 안에 최대한으로 무지를 극복하는 것이다. 교육은 그 장님 같은 무지와 싸우는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한국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스라엘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 친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한국 시인들이 쓴 많은 책들이 히브리어로 번역되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간 일이 있는데, 수도 서울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도시의 중심부에 거대한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책의 숲속을 거닐던 모습이란…. 수도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술과 경제를 얘기할 때 문화를 잊지 말자. 부동산을 논하더라도 정신적인 재산을 잊지 말자. 한국은 미술, 춤,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름다운 전통을 가졌다. 우리도 그렇다. 앞으로도 이런 전통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시몬 페레스(Shimon Peres)는

1923년 폴란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1934년 아버지를 따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1947년 유대인 무장단체 하가나에 들어가 무기구입 책임자가 되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벤 구리온에게 발탁돼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중책을 맡고 하버드대 유학도 했다. 난민구제장관·정보장관·종교장관·국방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온건한 성향이 바탕이 돼 외무장관 재임 중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세 차례 총리를 지내고 2007년 임기 7년의 대통령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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