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건물은 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은 옛날 얘기다. 매년 서울 거리 어딘가엔 남다른 인상을 가진 건물이 들어서고, 그 인상은 거리로 스며들어 도시의 표정을 변화시킨다.

그런 특별한 건축물이 어떻게 서울의 얼굴을 바꿔놓는지, 실제 느껴볼 기회가 지난 10·17일 두 차례 마련됐다. 강남구 논현동 '어반 하이브'를 비롯해 올해 서울시 건축상을 탄 건축물 5곳을 돌아보는 '2009 서울시 건축상 투어'다. 한국건축가협회가 운영·인솔을 맡았고, 몇몇 건물은 설계자가 직접 안내했다.

서초구 양재동‘엘타워’.

유리와 화강석 비늘 입은 '엘타워'

서초구 지하철 3호선 양재역 사거리에서 분당 쪽 방향 대로변에 첫 투어 대상인 '엘타워'(EL Tower)가 위치하고 있다. 비주거(non-residence) 부문에서 최고상인 본상을 받은 건물로, 설계자인 ㈜한울건축의 이성관씨가 투어에 참가한 40여명을 안내했다.

결혼식·돌잔치 등을 위한 연회 공간으로 설계된 엘타워는 언뜻 보면 평범한 직육면체 빌딩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와 디자인이 서로 다른 화강석과 유리창들이 뒤섞여 독특한 패턴이 외벽에 드러난다. "상자형 건물이지만 주변 업무용 빌딩들과 다른 표정을 주는 게 과제였죠." 이씨는 "아름다운 나비 날개가 미세한 비늘로 이뤄진 데 착안해 2~3가지 돌과 유리를 섞어 썼다"고 말했다.

최상층부 디자인도 독특해 직육면체 유리 상자가 건물 아래층과 간격을 두고 떠 있는 형태다. "이 옥상 쪽 구조와 외벽 패턴에 개성을 담았습니다. 햇빛이 어디서 비치는가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표정이 달라지는 건물이니까, 지날 때마다 눈여겨봐 주세요."

서초구 서초동‘부띠끄 모나코’.

'실종된 공간'이 만든 '부띠끄 모나코'

건축물 투어는 서초동 삼성타운 맞은편에 들어선 '부띠끄 모나코'(Boutique Monaco)로 이어졌다.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씨가 설계해 거주(residence) 부문 본상을 받은 오피스텔이다. 건물 중앙과 외벽에 군데군데 직육면체 형태의 빈 공간이 나 있는 독특한 형태다.

건물 외관도 재미있지만, 더 재미있는 건 법적 제한을 따르려다 보니 이렇게 '실종된 공간'을 만들게 됐다는 점이다. 법이 허용한 높이제한과 건폐율(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바닥 면적의 비율) 40%를 최대한 맞춰 건물을 27층까지 올리려니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총연면적의 비율) 제한 970%를 꼭 10% 초과했다. 27층 건물을 지으면서 용적률도 맞출 묘안을 찾다가, 건물 중간 여기저기를 골고루 덜어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중정(中庭)에서 건물을 올려다보면 내부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강남구 논현동‘어반 하이브’.

구조가 디자인된 '어반 하이브'

올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강남구 논현동 '어반 하이브'(Urban Hive)는 흔히 '교보타워사거리'로 불리는 강남 한복판에 있다. 백색 콘크리트 외벽에 지름 105㎝의 둥그런 창이 수없이 뚫려, 이름 그대로 도심 속 벌통(hive)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건물 출입구도 삼각형 모양이라, 한동안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인이었다.

"건물이 특이하게 생겼다고들 많이 그러지요." 설계자인 ㈜아르키움의 김인철씨는 "사실은 일부러 모양을 이렇게 낸 게 아니라, 그저 건물 구조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겁니다."

보통 고층 건물은 구조를 설계한 뒤 외벽을 따로 디자인해 덧입힌다. 김씨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독창적인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해, 철근에 콘크리트를 씌운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되 창을 내기로 했다"며, "채광과 조망을 고려하며 콘크리트의 무거운 느낌도 줄이려고 스펀지처럼 구멍을 냈다"고 말했다.

문화의 꽃 되살린 '명동예술극장'

투어는 한강을 건너 명동으로 이어진다. 일제시대인 1936년 지어진 건물로, 1975년까지 '명동국립극장'으로 문화중심지 노릇을 했던 '명동예술극장'을 찾아갔다. 한 금융회사가 낡은 건물을 사들여 사용하다가 철거하려는 걸 명동 상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막아내 복원을 마치고 지난 6월 34년 만에 재개관했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의 한종률씨가 설계를 맡아 서울시 건축상 리모델링 부문 본상도 탔다.

극장 외관은 옛 모습 그대로다. 내부는 새로 짓더라도 외벽(facade)만큼은 원형 복원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 리모델링한 덕분이다. 금융회사 시절에 덧칠된 페인트를 씻어내고 일부 파손된 부분을 수리했을 뿐, 나머지는 1930년대 것을 고스란히 남겨뒀다. 극장의 무대·음향 장비 설치공간이 옥상 위로 불룩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걸 살려 레스토랑과 옥상정원을 꾸몄다. 옥상 난간에 기대 남산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 있다.

중구 명동‘명동예술극장’(사진 위), 34년 만에 재개관한‘명동예술극장’의 옥상 정원과 레스토랑.

대학과 주민 이어주는 '랜드스케이프 복합체'

올해 공공(public) 부문 본상은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랜드스케이프 복합체'에 돌아갔다. 인근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야외 공공 공간을 둘러싸고 종합강의동·법학관·종합체육관 등이 공존하는 건물이다. 공동 설계자 중 한 사람인 운생동㈜ 신창훈씨는 "대학이라는 도시의 네트워크를 이어주며, 학생과 시민들이 쉴 공공 공간을 많이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복합체 중심엔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도록 계단형 데크를 깐 광장이 있고, 강의동은 여러 층에서 모두 광장과 연결된다. 기존 부지에 있던 테니스 코트를 살리는 대신 천장을 씌워 그 위에 광장을 만들었다. 신씨는 "종합체육관 위에 광장을 얹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 광장이 종합강의동과도 연결되며 학생들의 쉼터이자 캠퍼스의 중심이 되는 겁니다."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랜드스케이프 복합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