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의 잔치 풍경은 어땠을까. 1848년 창덕궁에서 열린 궁중잔치를 그림으로 기록한 〈무신년진찬도(戊申年進饌圖)〉는 조선 궁중잔치의 성대한 규모를 보여준다. 헌종이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김씨의 육순(六旬)과 왕대비인 신정왕후의 망오(望五·41세)를 기념해 벌인 이 잔치는 3일에 걸쳐 4차례 열렸다.

그림은 4장면으로 나뉘어 8폭 병풍에 담겼다. 1·2폭은 문무백관들이 왕에게 하례를 올리는 '진하례(陳賀禮)', 3·4폭은 통명전에서 열린 '내진찬(內進饌·대왕대비를 중심으로 여성들이 참석한 잔치)' 풍경을 그렸다. 5·6폭엔 밤에 열린 '야진찬(夜進饌)', 7폭에는 다음 날 열린 '익일회작(翌日會酌)' 장면이 펼쳐진다. 붉은 천이 사방에 둘러쳐진 내진찬 그림을 보면 악사들이 천 밖에서 연주하고 있어, 향연에도 남녀유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48년 창덕궁에서 열린 향연을 기록한〈무신년진찬도〉. 8폭 병풍(한 폭의 가로 47.6㎝, 세로 136.1㎝)에 4개의 장면을 그렸는데, 막상 축하받는 순원왕후나 헌종의 자리는 빈 의자로 등장한다. 왕권의 존엄함 때문에 그림에 임금과 직계친족은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12월 6일까지 《잔치 풍경-조선시대 향연과 의례》를 열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은 물론 사대부와 서민들이 즐겼던 다양한 잔치 모습을 각종 기록화와 기록·공예품을 통해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와 2부는 왕실의 축하 의례와 향연 문화를 보여주고, 3부와 4부는 사대부와 민간의 잔치문화를 각각 소개한다.

1부 '왕실의 축하 의례'는 원자(元子)의 탄생과 왕세자 책봉(冊封), 가례(嘉禮), 즉위식 같은 기념일이나 경사스러운 날에 열린 축하의례의 내용을 살핀다.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의궤(儀軌)들이 특별히 출품됐다.

《진찬의궤》에 나타나는 용준(龍樽)과 비슷한 청화백자 항아리. 용 무늬 항아리는 조선시대 궁중잔치에서 꽃을 꽂거나 술을 담기 위해 쓰였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2부 '왕실의 향연'에서는 왕실 축하의례와 함께 열린 궁중 잔치를 소개한다. 왕실 향연의 주요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 진찬도(進饌圖), 궁중 잔치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진찬의궤(進饌儀軌)를 볼 수 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탄신 60주년을 맞아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행궁에 행차하는 것을 그린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는 총 길이가 46m에 달한다. 전시장에는 이 중 일부분(17m)을 길게 펼쳐놓았다. 민병찬 학예연구관은 "지금까지 박물관 전시물 중 가장 긴 것으로, 행렬을 선도하는 군사와 호위병·대신 등 등장인물만 1만여명에 이른다"고 했다.

전시장에는 각종 그림·기록화와 함께 궁중잔치에 사용된 왕실 공예품들이 나란히 비교 전시돼 눈길을 끈다. 어좌(御座)를 장식한 궁중 채화(綵花)와 왕에게 올린 잔칫상도 재현해 놓았다.

3부 '백성들의 잔치 한마당'에서는 돌잔치, 혼례, 회혼례(回婚禮), 수연(壽宴) 등 사람의 일생에서 경사스러운 일을 골라 그린 '평생도(平生圖)'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민간잔치를 소개한다.

4부 '벼슬길의 기념잔치'에서는 사대부들의 관직 생활 중 열렸던 각종 축하의식과 기념잔치가 펼쳐진다. 과거에 급제한 후 벌이는 시가행진 격인 '삼일유가(三日遊街)' 그림을 비롯해 관직 부임시 열린 향연들을 그린 향연도(饗宴圖),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문인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를 통해 연회 풍경은 물론 당시 유행한 복식과 기물을 확인할 수 있다. (02)2077-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