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축구하는 거 보면 팬들 다 떠날걸요" |
'나는 비와 함께…' 이병헌 3작품 연속 악역…"부담 없다" |
'톱스타 이병헌의 약점은 무엇일까?'
태권도로 단련된 탄탄한 몸과 잘생긴 외모, 수준급의 노래실력 그리고 외국어 실력까지 겸비한 '완벽남' 이병헌. 한류스타를 넘어 월드스타로 성장한 이병헌이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약점을 밝혔다.
"저 축구하는 걸 보면 아마 팬들이 다 떠나갈 겁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촬영 당시 축구를 많이 했어요. 항상 제가 제일 열심히 뛰는데 공은 한 번도 못 잡아요.(웃음) 배구 농구 같은 구기종목도 잘 못하고요."
솔직한 대답에 월드스타란 생각보다 친한 형 같은 느낌의 소탈한 모습이다.
시원시원한 말솜씨와 서글서글한 모습을 보면 영화배우 수애가 마음이 흔들려 벽을 쳤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수애는 배우로서 참 좋은 소양을 가진 친구예요. 그런데 영화 '그해, 여름'을 같이 촬영하면서 안에 갇혀 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로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죠. 그래서 몇 번 조언을 했었죠." 마치 친동생을 아끼는 마음 같았다.
이번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이병헌 악역 3종세트'의 마지막편이라고 할 수 있다. '놈놈놈' '지아이조'에 이어 3연속 악역을 맡았으니 아무래도 이병헌의 '악역 엑기스'가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은 좀 다른 악역이에요. 전 작품들은 아무래도 상업영화니까 외향적인 악역이죠. 그런데 이번엔 악역이 아니라 악인이에요. 과장된 연기나 표정이 없고 오히려 무표정이 더 많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배우로서 카타르시스를 여러 번 느꼈는데, 모니터링하면서 '나한테 이런 표정이 있었나?'하고 놀랄 때가 많았어요." 그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추가했는데, 섬뜩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극장에서 '악인 이병헌'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겠지만, 계속된 악역에 혹시 한류팬들이 떨어져 나가진 않을지 걱정도 조금 된다.
"일본팬 중에 '이병헌씨가 악역을 맡으면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며 도덕적으로 훈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전 배우가 팬들을 의식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팬이라면 그 배우의 선택과 활동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이병헌은 인터뷰 내내 여느 한류스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문득 그가 원하는 건 '한류스타' '월드스타'가 아니라 '배우'란 단순명료한 직업을 원하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한류스타라면 당연하게 벌이는 그 흔한 사업 하나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게다가 몇 년만에 겨우 한 작품을 하는 스타들과는 다르게 쉬지 않고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성격적으로 사업은 못할 거 같아요. 지금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 중인데 '놈놈놈' 일본 개봉한다고 프로모션 다녀오고 현장 복귀하니까 정신이 없더라고요. 적응하는데도 며칠 걸리고.... 이번 영화 인터뷰하면서도 다시 그때 생각나고 하는데, 현장 돌아가면 또 정신없을 거예요. 이래서 어떻게 사업을 하겠어요. 전 사업은 못해요."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는 오는 15일 개봉한다.
"첫사랑을 10년만에 만난 느낌 아세요?" |
'호우시절' 정우성 고원원과 호흡…영어 연기도 |
"사랑이야말로 만국공통어 아닐까요."
배우 정우성은 편안해 보였다. 허진호 감독의 신작 '호우시절(好雨時節)'에서 그는 10여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 사랑에 가슴 설레는 '동하'를 연기했다. 두보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호우시절'은 일본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맑은 수채화같은 영화다. 중국배우 고원원과 호흡을 맞췄고, 영어연기도 선보였다.
동하는 한때 시인을 꿈꿨던 평범한 회사원이다. 전형성이 가미된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일상적인 캐릭터다. 스스로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세상에 내려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되살아난 사랑의 추억 속에서 간절해하고, 가슴 설레고, 맺어지기 쉽지 않겠지만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까 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미묘한 감정선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허 감독님과 첫 작업이라 처음에 당황했어요. 배우를 찍는 건지 배우가 있는 공간을 찍는 건지..., 동하와 메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카메라로 잡아내려고 애쓰셨거든요."
허진호식 멜로엔 적응기가 필요했다. 한 장면이 끝나도 OK인지 NG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감독님 뭐예요?"라고 따져물으면 "네가 지금 방에 들어왔는데..., 왜 들어온 거지?"라고 오히려 되물었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가운데 동하란 캐릭터를 찾아내고, 만들어내야 했어요."
그에겐 주인공 동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대 중반에 고교시절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만나 말 높이기도 뭐하고, 존댓말 쓰기도 뭐한 그런 분위기 있잖아요. 말 꼬리를 흐리며 더듬더듬 이야기하는데 곧 결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기분이란 참...."
상대배우인 고원원에 대해선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예뻤고, 함께 촬영하면서 인품이 참 '잘 생겼다'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파트너를 받아주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고, 한국 배우와 스태프 속에 잘 녹아들었다고 회상했다. 정우성은 이 영화에서 무난한 영어연기를 선보였다. "감독님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좀 어색한 영어를 원했지만 저는 이왕이면 능숙하게 구사하는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약 어색한 발음이었다면 관객들이 거기 신경쓰느라 영화의 몰입에 방해가 될 것 같았거든요. 물론 영어에 앞서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지요." 한국인 동하와 중국인 메이는 서로의 모국어 대신 영어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공통어란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독 데뷔를 공언해온 정우성은 "그동안 해온 말이 있으니 늦어도 내년 안에는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덧붙였다.
< 김형중 기자 h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