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역대 팀 최다연승기록(16연승, 1986년)을 지켜내기 위한 삼성의 마지막 몸부림도 SK 앞에선 소용이 없었다.

지난 9월 22과 23일, 양 일간에 걸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삼성은 문학구장에서 15연승을 달리던 SK를 상대로 팀 최다연승기록 방어와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배수의 진을 쳤지만,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 SK에 있어 삼성은 그저 스쳐지나는 간이역에 불과했다.

한편 삼성의 눈물을 제물삼아 23년 묵은 팀 최다연승기록을 갈아엎는데 성공한 SK는 남은 두산과의 잔여경기(2경기)마저 무사통과, 연승기록을 ‘19’로 한껏 늘려놓은 채 시즌을 갈무리지었다.

올 시즌 SK가 일궈낸 가공할 ‘19연승’ 기록은 한국무대를 뛰어넘는 아시아 신기록이다. 그 동안은 일본프로야구의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 뱅크 전신, 1954년)와 다이마이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전신, 1960년)가 기록한 18연승이 최다 기록이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의 최다 연승 기록은 뉴욕 자이언츠의 26연승(1916년)이다.

그런데 SK가 삼성을 누르고 17연승의 새로운 신화를 쓰던 그 날, 많은 사람들은 SK의 연승기록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기 시작했다. 이는 SK가 12연승을 거둔 후, 바로 다음 경기(9월 16일, LG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을 지목해 하는 말이었다. (삼성은 16연승 당시 무승부를 단 한차례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 동안 연속기록 인정에 있어 무승부는 연승이나 연패기록 등의 중단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관계자나 팬들이 모르는 바 아니건만, 이와 같은 이의제기가 줄을 이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바로 올 시즌 적용된 ‘무승부=패’라는 승률계산에 관한 대회규정 때문이었다.

이 규정을 그대로 대입하면 9월 16일 SK가 LG전에서 기록한 무승부 경기는 곧 패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SK의 연승기록은 ‘12’에서 끝이 난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9 시즌을 앞두고 KBO가 발표한 승률계산법(승수/총 경기수)에 의하면 분명 SK의 53패 안에는 무승부(6무)가 들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해석과 이의제기는 일면 당연하고 일리있는 주장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올 시즌 적용한 무승부를 패로 간주하는 승률계산 방식은 고육지책에서 나온 일종의 계산상 편법이었음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지난해 실시했던 ‘무제한 이닝’과 ‘무제한 시간’의 끝장승부가 여론의 절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의 반대로 시행 1년만에 전격 폐지키로 결정된 이후, KBO는 그에 대한 보완책을 연구해야 했는데, 문제는 과거 시행했던 여러가지 사례를 아무리 되짚어봐도 승률계산에서 무승부경기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다.

과거 무승부를 0.5승으로 간주하거나 승률계산에서 아예 제외하는 방법 등을 써보기도 했지만 경기 막판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무승부 종료를 위해 질질 시간을 끄는 등, 그간 이런저런 부작용을 눈으로 보아왔던 터였다.

따라서 팀들이 무승부를 싫어하게 만드는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때마침 떠오른 것이 무승부를 패로 간주하는 방법이었다.

다만 무승부가 두 팀 모두 패로 간주되면 그에 따르는 반사이익을 제3의 다른 팀들이 누리게 된다는 점과 최종회(12회) 연장 초 공격에서 리드점을 뽑지 못한 팀이 어차피 패로 결정난 경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함께 지적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완벽한 규정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상황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부각된 방안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지난 6월 25일(광주), SK가 투수가 바닥나지 않았음에도 무승부로 끝내려는 최선의 노력대신 최정을 마운드에 올리는 등의 다음을 위한 전력비축 선택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본 KIA의 극적인(?) 승리가 막판 순위싸움에서 1승이 아쉬울 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승리가 날아갔다고 해도 상대편 팀이 승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또한 승리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하겠다.

물론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팀 서열에 있어 승수가 같을 경우, 무승부를 더 많이 기록한 팀이 앞에 선다는 별도 조항 하나쯤을 더 마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분명 무승부는 패한 경기와는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올 시즌 한국프로야구에 적용된 ‘무승부=패’ 규정은 끝장승부의 폐지로 인한 연장 막판의 나태한 경기운영을 방지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경기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고안된 정통법이 아닌 일종의 특별법(?) 성격의 규정이다.

무승부를 ‘패’로 본다는 것은 사실이나 단정이 아니라 일종의 제한된 가정이다. 팀 순위를 가르는 수학적 승률계산에만 한정해 그렇게 적용을 하겠다는 것으로, 필요에 의해 생겨난 한국프로야구 만의 암묵적이고도 임의적인 공식인 것이다. 연승을 비롯, 각종 기록들에 대한 기준 원칙이나 정의까지도 바꿀 만한 실질적인 파워나 효력은 실려있지 않다.

따라서 SK의 19연승 기록은 비록 중간에 1무승부가 끼어 있긴 하지만, 관례적인 연승기록 인정기준이나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기록원칙에 비추어 볼 때 전혀 하자가 없는 기록이다. 흠이 있다면 무승부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19연승에 비해 순도가 조금은 떨어진다는 것 뿐.

만일 그래도 SK의 19연승 기록에서 굳이 ‘옥의 티’를 찾아내고 싶다면 무승부가 끼어있고 아니고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에서 단서를 찾아보는 것이 좀더 나을 듯 싶다.

그것은 연승의 시기문제다. SK는 연승기간 동안 대부분의 경기를 잔여경기로 치러내면서 연승기록을 만들어냈다. 다른 팀과 똑 같은 조건인 주당 6경기를 치르는 빡빡한 정규일정에서 19연승을 기록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일찍이 김성근 감독도 언급했듯이 경기일정 상의 덕을 톡톡히 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주일에 3-4경기를 치르는 여유있는 일정으로 때에 따라서는 한 경기에서 선발급 투수를 중첩 기용하는 등, 투수력을 총동원해가며 기록한 연승이라는 점은 훗날 SK의 19연승 대기록을 설명함에 있어 일말의 핸디캡으로 지적될 수 있는 요소라 하겠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