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강남구 삼성동(三成洞)은 서울에서도 번화하고 부유한 동네지만, 1963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한 리(里)였다.

삼성이란 지명도 일제시대인 1914년에서야 생겼다. 조선시대 이 일대엔 봉은사·무동도·닥점 세 마을이 있었는데, 일제가 마을 셋을 합하며 '삼성리'라 이름했다는 것이다.

'무동도'(舞童島)는 한강 가운데 놓인 섬으로, 어린애가 춤추는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의 삼각주를 무동도라 불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던 저자도(楮子島)의 다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무동도 인근의 마을인 '닥점'은 닥(닥나무)을 파는 가게가 있어 그리 불렸다. 저자도에도 닥나무(楮)가 많이 자랐기에 '무동도=저자도'란 견해가 생긴 것이다.

저자도는 풍경이 아름다워 고려 때 문신인 한종유의 별장이 있었고, 세종대왕이 낚시를 즐긴 적도 있다. 유서 깊은 곳인데 1970년대 압구정동 개발을 하며 섬의 흙을 모두 퍼내 써서 사라져 버렸다.

봉은사(奉恩寺)는 1200여년 전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다. 조선 초 폐지된 승과고시가 명종 때 일시 부활했을 때 거기 응시한 수천 명의 승려가 봉은사 앞 벌판에 모여 시험을 치렀다.

이후 그 벌판을 '중의 벌' '승과평'(僧科坪)이라 불렀다는데, 지금은 코엑스(COEX)가 들어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