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생일이 다가오면서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생일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요즘 필요한 게 뭐야"라고 묻곤 했는데, 우유 한 모금만 들이켜고 출근을 서두르던 아내가 올해는 "필요한 거 없어"라고 무덤덤히 말한 것이다. 회사에서 컴퓨터 메신저를 통해 물어볼까 했지만, 내내 '자리 비움'이었다. 바쁘게 일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만 늘어갔다. 그러고 보니 연애시절 들락거리던 카페도, 두런두런 둘러보던 골목도 멀리한 지 오래다. 그녀가 필요하다는 책과 니트와 계산기를 선물한 적이 있지만, 매번 고맙다고만 말할 뿐 연애 시절처럼 유쾌하게 놀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내의 탓도 있다. 그녀는 가로수길 프렌치 레스토랑을 예약하겠다는 내게 "우리 결혼했으니까 이제 그런 데 안 가도 돼"라고 말하며 냉동만두를 녹였다. 게임회사에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지휘하는 아내는 여행잡지를 만드는 나보다 더 잦은 해외출장을 가고, 생일날 아침 케이크 촛불만 간신히 끈 채 일터로 달려나가기 일쑤였다.
고민의 끝은 여행이었다. 잦은 출장을 다니지만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일 뿐인 아내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명절을 나느라 고단했을 어머니에게도, 갓 태어난 손녀를 돌보느라 고생하셨던 장모님께도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선 이 모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는 다른 방법의 여행을 선물하기로 했다. 바로 '여행의 꿈'을 말이다. 아내에게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어머니에게는 언제 쓸지 모를 엔화를, 장모님께는 견고한 지구본을 선물하면 어떨까. 잠시나마 웃으며 여행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흡족하고 행복해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