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몸이 두 개여서 또 다른 내가 회사에 대신 출근해준다면 오죽 좋을까. 남한테 싫은 소리 할 때나 들을 때도 대신 해주고, 가기 싫은 친구 애 돌잔치도 대신 가준다면? 게다가 또 다른 나의 외모는 전신성형이라도 한 듯 완벽하다면? 생각만 해도 그건 천국이다.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한 '써로게이트'의 발상은 그래서 꽤 재밌다. 배경은 완벽한 대리 로봇 '써로게이트'가 개발된 미래. 인간이 집 안의 기계장치에 누워서 써로게이트와 뇌파를 연결하기만 하면 밖에 나가 장도 봐오고, 회사 일도 해주고, 심지어 피곤한 연애도 대신 해준다. 당연히 너도나도 이걸 구입하니, 어느 새 거리엔 인간 대신 써로게이트만 활보하는 세상이 된다. 이런 기형적 유토피아가 도래한지 15년 후. 지구에 간만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FBI 요원 그리어(브루스 윌리스)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써로게이트를 둘러싼 음모를 발견하고 써로게이트로 이루어진 세상에 심각한 회의를 느낀다.
할리우드가 인공지능로봇들을 속속 등장시켜왔지만, '써로게이트'의 로봇은 너무 일상적이라서 더 소름끼치는 면이 있다. 만능 대리로봇 써로게이트의 상용화 때문에 전 인류가 '은둔형 외톨이'가 돼 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U-571' '터미네이터 3 : 기계들의 반란'을 연출했던 조나단 모스토는 또 하나의 나로 인해 진짜 내가 격리되는 이 기묘한 천국을 세밀하게 창조해냈다. 출근 시간 지하철에 온통 써로게이트만 보이는 풍경, 거리의 써로게이트 대신 집에 있는 인간은 씻지도 입지도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모습 등등. 충분히 가능성 있는 미래의 비주얼이라 더 소름끼친다. 아들을 사고로 잃은 FBI 요원 그리어와 그의 아내도 그렇다. 둘은 한 집에 살지만 각자의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으며 함께 식사하지도 대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써로게이트가 고장이라도 나야 방문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뿐이다. 그런 삶이 견딜 수 없어진 그리어가 마침내 자기 몸으로 거리에 나온 순간 방안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천국의 비정상적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첨단 사회의 희망으로 보였던 써로게이트가 인간다움이 없어진 세상의 절망이 되는 것이다.
써로게이트 사용 반대주의자들의 시위와 써로게이트를 대량 보급한 대기업의 음모가 얽히는 등 복잡한 음모론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건 결국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 물음의 답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참, 써로게이트들의 지나치게 '링클 프리'한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인간의 주름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